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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개척] 샤이, 스트롱, 댄싱… 오로라는 계속 움직였고 꿈틀댔고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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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직장인, 버킷리스트를 따라 오로라를 보다



사소한 꿈의 목록,
인생의 나침반이 되다


언제부터였을까, ‘버킷리스트’라는 단어가 이렇게 흔하다 못해 상투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버킷리스트’는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노인이 마음속에 두었던 각자의 소망을 함께 실행에 옮기는 2007년 개봉한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이후 유행처럼 번졌다. ‘웰 다잉’(Well-dying)’이라는 사회적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사전에 검색하면 결과가 바로 뜨는 고유명사로까지 자리 잡았다. 물론 나에게도 버킷리스트가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과 버킷리스트를 공유하며 꾸준히 목록을 추가했다.


스무 살, 학교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파이오니아 프로그램(GPP)에 도전한 이후 해외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스물 한 살, 서울대에서 교환 학생으로 공부했고 스물 두 살 겨울은 스키장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다. 스물 세 살 때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모스크바까지 갔다. 이후 미국 텍사스에서 인턴십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작성한 버킷리스트를 따라 진행되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꿈을 적는 목록.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버킷리스트였다. 사소할지 모를 이 목록은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고 망설임 없이 무언가 덜컥 저지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내가 오로라를 보다니…’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20대 초반에는 비교적 버킷리스트를 이룰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하루 연가를 쓰려면 어쩔 수 없이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 대한민국의 수많은 일개미 가운데 하나가 되고 나니 버킷리스트는 사치라는 말이 이해되었다. 그런데도 버킷리스트는 종종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순간을 놓치지 않게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직 기회, 그리고 기적적으로 찾아온 한 달의 여유. 이 시간 동안 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실행했고, 완료의 의미로 선을 그었다. 오로라 보기를 이룬 것이다.


오로라를 보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름이 걷힌 하늘, 쏟아질 듯 많은 별, 어둠에 적응된 두 눈, 그리고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이 너무도 많기에 사람들은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은 도시를 찾아간다. 그중 내가 택한 곳은 북극권 최대의 도시이자 오로라의 메카로 불리는 노르웨이 트롬쇠였다. 노르웨이가 가진 피오르의 장엄함과 그 나라 사람들 특유의 친절함은 오로라를 보기 전 그 기대치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첫째 날은 핀란드 국경까지 넘어가 기다렸지만 오로라를 볼 수 없었다. 볼 수 없을 것이란 가능성을 염두해 두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실패의 상황이 닥치니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커졌다. 둘째 날은 트롬쇠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가이드였던 다니엘은 구름의 흐름을 읽었다.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져 별이 하나둘 보이는 곳을 쫓아갔다. 인공 조명 불빛이 먼지 층에 반사돼 별을 제대로 볼 수 없는 현상을 빛 공해라고 하는데,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이 빛 공해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야 한다. 모닥불을 피우고 방한복과 신발을 챙겨 신고 저녁을 다 먹어 가는데도 날씨가 영 맑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북쪽으로 30분 정도 더 올라갔을 때 정말 희미한 오로라 한 줄기를 카메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다니엘만 유일하게 알아보는 그런 오로라였다. 더 선명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잠시, 다니엘이 하늘이 다시 닫히고 있다고 이동을 권유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는데, 차 안에서도 다니엘은 본인이 왼쪽에서 운전하고 있으니 오른쪽 하늘을 부탁한다며 오로라를 발견하면 즉시 외쳐 달라고 이야기했다. 불빛 한 점 없는 좁은 도로를 달리며 쏟아질 것 같은 별을 올려 보았다. 큰 산 뒤로 약간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산을 따라 커브길을 돌자마자 넘실대는 오로라를 발견했다. “다니엘, 여기야! 멈춰, 멈춰.” 내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다니엘이 차를 세웠다. 다니엘은 오로라마다 형용사를 붙여 표현했는데 선명해지다 이내 흐려지는 오로라를 보고 ‘샤이 오로라’라고 했고, 굵은 선으로 지나간 오로라에게는 ‘스트롱 오로라’라고 했으며 오로라가 악보를 그리듯 춤출 때는 ‘댄싱 오로라’라고 했다. 오로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오십여 장의 사진 가운데 같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오로라는 계속 움직였고 꿈틀댔고 변했다.


정말 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빛났고 그 옆에서 오로라는 계속 넘실거렸다. 오로라가 사라지면 다시 차에 올라탔고 다시 오로라를 발견하고를 두어 번 정도 반복했다. 나중에는 차에탄 모두가 너무 신나서 다음에 내릴 땐 어떤 오로라를 볼까 이야기했다.


‘오로라 헌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을 땐, 오로라를 봤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감기 몸살 기운이 올라왔다. 다음 날 하루 꼬박을 누워 있고 나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스칸디나비아 4개국의 모든 감기약을 경험할 수 있었다.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오로라 보기’ 직전 완료했던 버킷리스트 목록이 있다. ‘20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진 찍기’, ‘북해도에서 스키 타고 눈 축제 즐기기.’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보면 ‘버킷리스트라는 게 있으면 뭐해?’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살아 내야 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킷리스트가 있으면 망설이거나 고민할 시간이 줄어든다. 실제로 북해도 스키 여행은 출발 3일 전에 항공 티켓팅을 완료했고, 채 하루가 안 되는 시간 동안 준비해 다녀왔다. 예상치 못한 연차가 생기자 덜컥 비행기 표부터 구입한 것은 아마도, ‘북해도에서 스키 타고 눈축제 즐기기’라는 버킷리스트가 내 다이어리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 또 다른 버킷리스트였던 ‘폴 삼촌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 하기’를 이룰 것 같다. 폴은 미국 뉴욕에 사는 삼촌 중 한 명인데, 그가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랬던 조카는 그의 결혼식 하객이 되는 게 무려 버킷리스트였다. 덕분에 미드에서나 보았던 진짜 미국식 2박 3일 결혼식에 초대 받은 것이다.


가끔 퇴근길에 방탄소년단의 ‘낙원’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꿈이 뭐 거창한 거라고’, ‘그냥 아무나 되라고’ 노래하는 RM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생각해 본다.




김유진 국제통상학과 1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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