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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그녀들의 고된 발걸음, 농촌에 ‘여성농민’을 싹 틔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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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사는 여인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농민’이기 이전에 ‘어머니’ 혹은 ‘아내’로 불리며 농민 외의 다른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10년 전 나온 영화 ‘땅의 여자’는 대학 시절, ‘농사꾼’이 되겠다고 다짐한 세 여자의 이야기다. 대학 동창인 셋은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경남의 농촌 마을로 시집을 와 ‘아내’, ‘엄마’ 그리고 ‘며느리’가 된다. 진주시 지수면에서 살며 농사와 진주텃밭 이사장으로 일하는 여성농민 소희주 씨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부장제 최전선 농촌의 여성 이야기


영화 ‘땅의 여자’의 주인공 소희주 씨는 ‘진주텃밭’ 이사장으로 일하는 여성농민이다.


영화 ‘땅의 여자’를 이야기 하다


“세상은 쉬운 게 없어, 살아남아 있으면 좋은 날이 올까 싶어서 살아 있는데, 올라나.” 도시 생활을 포기하고 농촌으로 떠난 소희주, 강선희, 변은주 세 명의 대학 동창은 ‘농촌 아낙’이 되어 각자 저마다의 농민 운동을 진행한다. ‘땅의 여자’는 이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미나게 풀어낸 영화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바로 농촌 생활을 시작하는데 농사일은 서툴 수밖에 없다. 농민들이 주최하는 집회에 나가려다 경찰에 저지당하고, 농민의 권리 향상을 위해 선거에 출마하기도 한다. 이게 모두 여성농민, 그녀들의 진짜 삶이다.


“크고 거창한 뜻은 아니었어요.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땅을 지키는 가장 기초적인 곳에서부터 시작하자.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곳. 그곳에서 소중한 일을 하며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소희주 씨는 누구보다 생생하게 여성농민과 그들의 활동, 업적을 이야기했다.


1984년 여성농민들은 ‘농촌 부녀’, ‘농촌 여성’으로 불렸으나 이후 ‘여성농민’이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공간적·비계층적 개념을 가진 용어에서 주체적 의미의 용어로 바꾼 것이다. 동시에 여성농민운동 개념도 정의됐다. 여성농민운동은 여성농민의 세력화를 지향함과 동시에 여성농민에게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차별 없는 세상에서 당당한 생산 주체로, 운명의 주인으로, 나아가 평등한 삶을 누리기 위함이다.


여성농민이 펼친 노력과 현실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가 급변하고 있어요. 그런데 농촌 지역은 가장 변하지 않는, 불모지 같은 공간이에요. 그 속에서 여성의 지위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옛날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있어요. 여성농민들은 그런 문화 공간에 갇혀 살고 있고요.” 그녀의 말에는 여성농민들의 노력과 다르게 조금은 암담한 현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러한 ‘괴리’가 여성농민들이 했던 운동의 성과마저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30년 전 여성농민의 삶과 지금 여성농민 삶의 차이는 그들이 어떤 노력을 펼치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다. “전국여성농민총연합회(전여농)는 두 가지 방향으로 여성농민과 함께 했어요. 여성농민이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길 원한다는 길과 문화·사회적으로 소외된 농촌에 여성농민들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길요”


학교 급식 전면 실시, 농번기 마을 공동 급식 지원, 공동 경영주 등록 제도 마련, 여성농업인육성법 제정, 여성농민 전담 부서 설치, 농촌 보육시설 설립 등은 전여농 즉, 농촌 지역에서 여성농민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도입되거나 시작된 제도이다. 여성농민들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는 ‘정책’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농민의 품삯은 남성 농민의 60% 수준이다. 농가중심적인 농민 수당 등 개선이 필요한 요소가 많다. 이에 소희주 씨는 성과를 일궈내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고충을 토로했다.


“번번이 싸워야만 해결되는 게 많아 암울할 때가 많아요. 농사와 집안일을 병행하는 것도 힘들죠. 저처럼 이런 활동까지 하면 더 힘들고요. 남성들은 집 밖에서 일하면 여성들이 집 안에서 이른바 뒷바라지를 해주지만, 여성들은 집안의 본인 일을 다 하고도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보편적이잖아요.” 그는 이어서 “가장 힘든 건 농사를 지어도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내가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무엇보다 힘드니까요”라고 전했다. 여성농민의 소망은 그저 농사만 지어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인데, 농촌에서의 삶은 그들에게 삼중, 사중의 노동을 요구하는 게 현실이다.


주체적 생산자로서 우뚝 서다


농촌에서 트랙터를 끌거나 논을 관리하는 등의 일은 남자 몫이었다. 반면 밭농사를 일궈 종자를 거두고 씨앗을 지키는 일은 여성의 몫이었다. 소희주 씨는 이와 관련해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과 로컬푸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종 종자는 미래 식량으로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꼭 필요한 작물이에요. 그래서 여성농민들이 지켜왔던 토종 종자를 후대에 물려줘야겠다고 다짐했어요”라며 새로운 결심을 전했다. 또한 “로컬푸드 운동은 소비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그들에게 먹일 안전한 먹거리 재배하자는 운동에요. 제가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책임자의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전여농은 2009년부터 여성농민의 자립과 지위 향상을 위해 로컬푸드 운동의 하나인 ‘언니네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은 소규모 텃밭에서 여성농민이 직접 키운 작물 꾸러미를 매주 회원들에게 보내는 정기 구독 방식이다. 이들은 먹거리 안정성을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두고 생태 농법을 지향하여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또한 변화하는 소비자의 식생활 패턴을 따라잡기 위해 1인 가구를 위한 1인 꾸러미, 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꾸러미 등 새로운 구성을 시도하며 트렌드에 발맞추고 있다.



‘진주텃밭’은 진주 지역 중·소농 생산자들이 직접 소포장과 직거래를 하는 협동조합이다.

소희주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진주텃밭’도 진주 지역 중·소농 생산자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상품 수확과 포장, 직거래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조합원 대부분이 여성농민이다. 소희주 씨는 “소비자들이 작은 농산물을 키우기까지의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주면 보람되고 힘이 된다. 서로 상생하면서 살길 희망한다”며 “사람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먹거리를 사 먹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게 ‘언니네 텃밭’이나 ‘진주 텃밭’의 역할인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 취재 김송현 최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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