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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④] 통영 바다에게 충무의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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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마을, 루지, 케이블카…. 고성반도 남쪽 끝에 자리 잡은 통영시는 삼면이 바다로 싸여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사랑하는 여행지다. 충무라는 옛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역사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예술가를 배출하여, 청마문학관, 전혁림 미술관, 박경리 기념관 등 문학기행을 위해 관광객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 도시이기도 하다. 갈 곳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도시 통영, 그중에서도 서쪽에 있는 높은 벼랑에 서서 통영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근대문화유산 투어, 그 마지막 순서로 ‘통영 청마거리’를 다녀왔다.

 

|경남의 근대 건축 문화유산 ④ 마지막회- 통영 청마거리

 

서피랑에서 본 바다 전경

 

통영 청마거리의 시작, 충렬사

 

‘통영 청마거리’는 연재를 하며 지금까지 다녀왔던 근대역사 문화 코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었다. 기존의 유명 관광지인 통영중앙시장과 동피랑 마을에 인접하고 있어 교통편도 편하였고 무엇보다 자가용이 없는 뚜벅이 여행자들도 코스를 쉽게 둘러볼 수 있었다. 


코스의 시작은 ‘충렬사’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 영령께 제향을 올리는 위패 사당이다. 동입서출(東入西出)의 규칙을 지켜 계단을 올라가면 경내에는 제향을 준비하는 데 쓰이는 동재, 서재와 공의 정신을 교육했던 경충재와 사당의 사무를 맡아 보는 숭무당이 있다. 충렬사는 1606년 이운룡이 통제사로 부임하면서 왕명으로 지어진 곳이다. 이후 봄과 가을이면 삼도수군통제사들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제사를 지냈다. 내부는 위패 사당 외에 유물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볼 수도 있다.

 

 

충렬사 입구

 

‘박경리 거주지’와 ‘서피랑’ - 글이 그린 마을을 거닐다

 

충렬사에서 나와 ‘박경리 거주지’로 향하는 골목마다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했던 말과 그의 작품이 물들어 있었다. 사실 그가 태어난 집 자체는 현재 그와 연고가 없는 일반 시민이 살고 있기 때문에 평범한 집이다. 작은 표지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집을 둘러싼 골목에는 박경리 선생의 생애가 절절히 묻어 있었다. 그가 쓴 소설과 시, 그가 남긴 말까지…. 골목을 걸으며 박경리 선생의 사유를 되짚어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인 ‘나비야 청산가자’와 ‘도시의 고양이들’ 등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나비와 고양이 그림을 골목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박경리 선생 거주지에서 다음 코스인 ‘문화 배수지’로 가는 길에서 ‘서피랑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통영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동피랑 마을은 마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 단체에 의하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단체는 벽화 공모전을 열었고,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 마을은 입소문으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이런 동피랑 마을에 이어 서피랑 마을은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를 기대하며 꾸며진 마을이다. 동피랑 마을에 비해 아직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조용히 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고, 박경리 선생 거주지와 인접하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습이었다. 서피랑 이야기 터널을 지날 때는 터널 벽에 관광객들이 남긴 글을 볼 수 있었다. 분필이나 보드 마카를 준비해 간다면 글을 남길 수 있으므로, 꼭 특별한 글이 아니더라도 흔적을 남기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터널 옆 서피랑 공원에서 소풍 나온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화 배수지’는 1933년 건립된 상수도 시설이다. 배수지는 정화 과정을 거쳐 깨끗해진 물이 가정에 공급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치는 연못으로, 근대 도시가 갖추어야 하는 기본 시설이었다. 현재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자 문이 닫혀 있지만, 문화 배수지가 있는 주변은 깨끗한 물을 공급해 주듯, 문학과 문화를 널리 보여 줄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박경리 선생 거주지 일대 골목                                                               서피랑 공원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병관’을 가다

 

다음 코스는 조선 시대 해군기지였던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이다.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 낸다’는 뜻을 가진 세병관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3년에 이순신의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곳이다. 넓은 세병관 위는 더운 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쐬러 나온 할아버지들은 모여 앉아 선조가 어떻고, 이순신이 어떻고 하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건물에 가려 통영 앞바다가 완전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 시절, 평화를 기원하며 세병관에서 통영을 바라보았던 선조들을 떠올렸다. 은하수를 가져와서라도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 내고 싶었던 그들은 몇 백 년 뒤 통영의 모습에 어떤 표정을 지을까. 통영 앞바다는 그 과거를 기억하고는 있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파도만 일렁이고 있었다.

 

세병관

 

‘경남의 근대건축 문화유산’ 연재를 마치며

 

지난 2개월간 총 4번에 걸쳐 경남도가 제시한 ‘근대문화유산탐방코스’를 다녀왔다. 투어길 총 10개 가운데 ‘한 지역은 가급적 한 번만’, ‘진주에서 교통이 용이한 곳’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진해 근대역사거리 탐방길’, ‘밀양 하부마을 시간여행길’, ‘진주 중앙시장 체험길’ 그리고 ‘통영 청마거리’를 방문했다. 도시마다 분위기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근대건축문화유산을 주변 관광지와 연계하여 정말 하나의 관광 코스처럼 만든 도시가 있는가 하면, 건축물 자체에 초점을 맞춘 도시도 있었다. 사실 근대건축문화유산이란 것이 관광객들을 사로잡을 매력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근대문화유산은 어쩌면 근대 이전의 오래된 문화재보다 겉보기에 특색이 없을 수 있다. 누군가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대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한국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문화유산은 관광지로든, 문화재로든 눈길이 닿아야 할 곳들이었다. 연재를 위해 취재를 한 지난 두 달은,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어 보는 좋은 기회였다. 그 순간을 여러분도 누려 보길 바란다.


 

  • 취재 사진 이희성 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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