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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③] 익숙한 진주, 낯설게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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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좌캠퍼스와 칠암캠퍼스가 있는 ‘진주’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다. 상봉동, 대안동, 인사동, 옥봉동은 ‘진주성’과 ‘진주 시내’라고 불리는 로데오 거리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밥을 먹거나 쇼핑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로데오 거리를 조금 벗어나면 과거 진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그저 ‘진주 시내’로 불리던 길이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지, 근대문화유산 투어 그 세 번째 순서로 ‘진주 중앙시장 체험길’에 다녀왔다.


|경남의 근대 건축 문화유산 ③ 진주 중앙시장 체험길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329호로 지정된 지금의 비봉루는 정몽주 선생의 후손이 1939년 건립했다.


비봉루 부속 건물인 다도예절교육관은 팔각지붕에 사방으로 계자 난간을 두르고, 외부에 유리창을 부착한 한옥과 일본식 민가가 함께 어우러진 양식이다.


느긋하게 돌아 본 진주 시내

중앙시장 체험길은 ‘비봉루 다도예절교육관’에서부터 시작한다. 진주여고를 옆에 두고 비봉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기슭에 있는 ‘비봉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평일 낮이라 등산객이 얼마 없어 산은 조용했다. 비봉루는 고려조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장구지소(杖求之所)’로 ‘한가로이 머무는 곳’이었다는 말이 와닿았다.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329호로 지정된 지금의 비봉루는 정몽주 선생의 후손이 1939년 건립했다. 비봉루의 부속 건물인 다도예절교육관은 팔각지붕에 사방으로 계자 난간을 두르고, 외부에 유리창을 부착한 한옥과 일본식 민가가 함께 어우러진 양식이다. 비봉루와 다도예절교육관, 그리고 시내를 한눈에 담으니 여느 절경 부럽지 않았다. 그 옛날, 정몽주가 쉬어 가며 지금과는 다른 진주의 모습을 내려다보았겠지 하며 비봉루를 지나왔다. 비봉산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옥봉성당에 도착한다. 두 코스 사이의 거리가 15분 정도로 그리 가깝지 않다. 이어지는 코스 또한 꽤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냥 걷기보다는 자전거 같은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옥봉성당’은 1911년 진주 문산성당의 옥봉공소로 시작했다.                  옥봉성당 앞 나무가 성당의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옥봉성당’은 1911년 진주 문산성당의 옥봉공소로 시작해, 진주 지역 천주 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성당 건물을 신축하고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당 앞에 서 있는 나무는 굳이 테를 세어 보지 않아도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지켰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옥봉성당에서 중앙시장으로 이동하면 익숙한 시내의 모습이 눈에 띤다. 다음 코스인 ‘천황식당’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유명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맛집으로 소개된 만큼 식당 역사보다도 ‘진주비빔밥’ 맛집으로 더 익숙하다. 현재 건물은 6.25 이후 1954년에 신축된 것인데, 그보다 오래 전인 1927년부터 천황식당은 요식업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식당 내부에 다다미가 깔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나무 마루의 폭으로도 일식 목조 기술로 지어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밥을 먹으러 방문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기둥의 주춧돌이나 출입구, 환기창의 형태도 일제 강점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처음 온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세월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새겨진 식당 내부는 가장 손쉽게 과거에 다녀오는 타임머신과 같았다.


천황식당 현재 건물은 6.25 이후 1954년에 신축된 것이다.  

천황식당으로 가는 길, 또 천황식당에서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중 ‘중앙시장’을 가로지르게 되는데, 오랜만에 하는 시장 구경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 중 하나이다. 필자 또한 지나는 길에 끝물에 들어선 딸기를 한 대야를 사 들었다. 시장에서 길을 건너 우리가 시내라고 부르는 로데오 거리를 지나면 진주교육청과 진주의 가로수길이라고 불리는 카페거리가 나온다.

진주 교육청 옆 벽돌 건물은 ‘배영초등학교 구(舊) 본관’이다. 현재의 배영초등학교는 신안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구 본관은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진주교육청을 끼고 옆으로 돌아가면 진주초등학교가 있다. 1895년 소학교로 개교한 이곳은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평일이라 학교 안을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교문에서 오른편에 길쭉한 벽돌 건물이 보였다. 1934년 신축한 ‘진주초등학교 강당’은 그때 모습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곳을 지나 ‘진주성’으로 가면 ‘중앙시장 체험길’ 모든 코스를 돌아보게 된다.


삼남의 중심, 진주의 옛 모습


과거 진주는 남쪽의 세 도(道), 삼남(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의 중심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전국 12목 가운데 하나인 ‘진주목’으로 불렸으며, 각 도의 관찰사가 거처하는 감영을 둔 행정과 산업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또한 지리적으로 지리산과 남해에 가까워 각종 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고 여러 지방의 산물이 집중되었다. 조선 시대 장시가 처음으로 나타난 15~16세기, 진주 지역에서도 장시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진주는 조선팔도의 온갖 물자와 사람이 수시로 모여들 정도로 큰 고을이라 하여 ‘웅부거읍(雄府巨邑)’이라 불렸기 때문이다.

이후 경상남도의 청사가 진주에 들어서면서 진주는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그 영광도 오래가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진주의 많은 농민이 토지를 잃고 몰락했다. 하지만 진주에서는 독립 운동이 끊이질 않았다. 1919년 삼일운동의 영향을 받아 진주 사람들은 장날이었던 3월 18일 만세운동을 벌였으며, 5월까지 약 20회에 거쳐 3만여 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교육 차별화 정책에 맞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설립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학생 운동이 확산되자, 진주에서도 1930년 1월 17일부터 학생들이 궐기하여 만세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민족독립운동은 지하 운동으로 전환되면서 비밀 결사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진주 지역에도 1931년에 진주농고 학생들의 비밀 결사, 1932년에 진주협의회와 진주고보 비밀 결사 등이 조직되어 활동하다가 일제의 경찰에 다수 검거되기도 했다.

  • 취재 사진 이희성 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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