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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①] 아픈 역사의 ‘기억’이 쌓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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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근대 건축 문화유산 ①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경남도청은 도내 전체 근대 건축 문화유산 가운데 관리 및 자산 가치가 높은 우선 관리 대상 60선을 중심으로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투어 길을 제안하고 있다. 단순한 흥미와 호기심 자극만을 위해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지 않게 한다는 원칙으로 ‘마산어시장 원마산 탐방로’, ‘거창 물안길’,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진해 군항문화 탐방길’, ‘밀양하부마을 시간 여행길’, ‘밀양 근대한옥 탐방길’, ‘진주 중앙시장 체험길’, ‘창원 역사마을길’, ‘남해 숨 쉬는 스포츠길’, ‘통영 청마거리를 걷다’라는 투어 길 총 10개가 선정되었다. 경상대신문사에서는 4회 연재에 걸쳐 투어길 4곳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 중 첫 번째 순서로 ‘진해 근대문화역사길’을 다녀왔다.


진해 구도심에서 만난 역사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일제는 1910년 4월 진해에 군항 건설과 시가지 조성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912년 대체적인 시가지의 형태를 완성했는데, 진해 구도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진해는 좋은 조건을 고루 갖춘 항만이 있는 곳이다. 진해만의 지리적 중요성을 깨달은 일제는 진해에 해군요새사령부를 설치하고 해군과 중포병대대를 주둔시켰고, 진해를 군항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때 진해중앙로타리 근처에서 생활하던 농민들은 갯벌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다. 진해는 일제의 아픈 기억을 품고 있는 도시이다.

진해 구도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당시 방사선 가로망 형태가 현재도 유지되고 있고, 곳곳에 당시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근대문화 역사길 탐방 코스는 이 흔적을 따라 ‘해군의 집 - 충무공 이순신 동상 - 문화공간 흑백 - 군항마을 역사관 - 군항마을 테마공원 - 진해군항마을 거리 - 육각집 - 원(영)해루 -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 - 선학곰탕(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 - 일본식 장옥거리 - 진해우체국 - 제황산 - 중앙시장 - 진해역’으로 이어진다.

진해에서는 현재 정기투어와 수시투어를 진행 중이며 정기투어는 월요일은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에 맞춰 별도의 신청 없이 집결지인 해군의 집에 방문하면 된다. 수시투어의 경우 10명 이상 신청 시 운영되며 투어 희망일 3일 전까지 사전 신청을 하면 된다. 덧붙여 군항제 기간에는 투어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100년 전 어느 날을 걷다

진해를 방문한 날은 아직 미처 봄이 오기 전, 맑은 2월의 마지막 주였다. 벚꽃이 피지 않은 진해의 거리는 어쩐지 생경했다. 버스에서 내려 근대역사거리 탐방 길의 시작점인 ‘해군의 집’으로 향하는 길, 벚꽃 아래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여좌천은 조용하기만 했다. 평일 오전이라 정기투어를 찾은 사람은 적었지만 해설사의 안내로 진해의 옛 모습과 일제 강점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듣고 걸음을 시작했다.

정기투어는 2시간 동안 진행되었기 때문에 모든 코스를 다 방문하지 않고 몇몇 코스를 제외하고서 투어가 진행되었다. 가장 처음 도착한 곳은 북원로터리의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었다. 동상은 1952년, 한국전쟁 당시 건립되었는데, 지금이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많은 지역에서 볼 수 있지만 당시 가장 먼저 건립된 것은 진해였다. “동상은 저 멀리 옥포바다를 향해 서 있어요. 옥포 바다를 쭉 넘어가면 일본이 있죠. 동상은 마치 일본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장군은 살아생전 그가 나라를 지켜낸 진해에서, 굳건한 모습으로 수호를 이어가고 있었다.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투어 해설사 여종희 씨에게 동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다음 코스인 군항마을거리로 향했다. 거리 곳곳에는 쉬이 보기 힘든 ‘마크사’들이 세월의 흔적을 새긴 채 남아 있었으며 그중 일부 건물들은 일제 강점기의 적산가옥(자기 나라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적산가옥은 일본식 건축물의 기본 형태인데 우리말로 장옥(長屋)이라 불린다. 장옥이란 말 그대로 긴 집이라는 뜻으로 지붕은 모두 이어져있고 얇은 벽으로 집을 구분했다. 벽이 얇기 때문에 이웃해 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그대로 전해져서 당시 일본인들은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속삭이곤 했다고 한다. 창틀 하나까지 옛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을 보며 한 세기 전의 거리를 떠올려 보았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육각집(뾰족집)을 발견할 수 있다. 6각 지붕이 있는 중국풍의 3층 건물인 육각집은 1912년에 건립된 100년도 넘은 건물이다. 현재는 일반 식당으로 운영 중인 이곳의 3층은 두 사람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으로, 과거 일본인들의 고급 술집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

거리를 지나 남원로터리에 이르면 백범 김구 선생 친필시비를 볼 수 있다.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 바다를 두고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 산을 두고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 주는구나.’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은 진해를 방문해 현재 해군인 해안경비대 장병들을 격려하고 조국 해방을 기뻐하면서 친필 시를 남겼고, 그것을 화강암에 새겨 비석으로 만들었다. 당시 김구 선생은 통일에 반대하는 집단에 의해 총을 맞고 그 후유증으로 수전증이 있었는데, 그가 직접 종이에 쓴 글에는 그 떨림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비석이 원래 있던 자리는 북원로터리였다. 현재의 모습은 이승만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기에 버려졌다가 하야 후 남원로터리로 자리를 옮겨 복구된 것이다. 그 흔적으로 화강암인 비석 윗부분이 깨져 있다. 그의 삶처럼 이 비석도 지난 세월 동안 순탄치 않은 생을 보냈다.

봄, 사랑, 벚꽃 대신

일제 강점기는 우리의 아픈 역사로 어떤 의미에서 아직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진행형일 수 있다. 혹자는 그 아픈 역사를 왜 보존해야 하냐고 말한다. 진해는 분명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양식의 건물들과 모노레일, 로망스 다리 등으로도 충분히 관광지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곳과 견주면 역사길 탐방이 그저 즐겁기만 한 기행은 아닐 수 있다. 역사길 코스에는 ‘인생샷’을 찍을 만한 포토존이 있는 것도 아니고, SNS에서 유명한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 코스가 아님은 분명하다. 대신 역사길에서는 ‘추억’이 아닌 ‘기억’이 있다. ‘인생샷’보다 중요한, ‘유명한 맛집’보다 알고 있어야 할, 진해가 품고 있는 기억들 말이다. “일제의 흔적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역사를 바로 알리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해설사 여종희 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탐방 코스 : 충무공 이순신 동상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탐방 코스 : 육각집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탐방 코스 :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탐방 코스 : 진해 우체국

  • 취재사진 이희성 수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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