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가기 메뉴



“하루에 수 명, 어느 날은 수십 명씩 고마웠습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터

   대학 시절 ‘59박 60일 무전여행’을 책으로 낸 안명영·최진철·김동환 동문

“체중에 이상 없다. 체력에 이상 없다. 장비에 이상 없다. 용기에도 이상 없다.” 1974년 과학교육과의 악동 셋, 맨주먹 맨손으로 진주를 나섰다. 지도 하나 들고 배낭을 둘러매고 행선지 적혀 있지 않은 차표 세 장에 청춘을 맡겼다. 고향이 그리울 땐 깃발에 눈물을 닦고 걸었고, 시련이 닥칠 땐 깃발로 이마를 동여맸다. 배낭끈이 어깨를 파먹고, 신발이 얼어 끈이 끊어져도, 하나뿐인 지도가 헤지고 찢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59박 60일 동안 전국일주 무전여행을 떠난 안명영·최진철·김동환(과학교육과 74학번) 동문의 이야기다. 세 동문은 지난 2018년, 44년 만에 1974년 겨울 당시 무전여행의 추억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보였다. 잠시 세 사람의 추억 속에 빠져보자.



사진 왼쪽부터 최진철(G, Guider), 안명영(C, Captain), 김동환(Serve Leader) 동문이다. 세 동문은 지난 2018년, 44년 만에 1974년 겨울 당시 무전여행의 추억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보였다.


떠나자! 무전여행(無錢旅行)

무전여행은 김 동문의 확고한 목표를 계기로 추진되었다. 그는 중학교 재학 시절 처음 무전여행에 대한 꿈을 꾸고 오랫동안 정보를 모았다.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낫다고 생각한 그는 대학 새내기 시절, 팀원을 찾았다. 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하면서 친한 친구인 안명영, 최진철 동문을 섭외한 것이다. “한 살 많은 내(안명영, C, Captain)가 리더를 하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처음 계획한 동환(S, Serve Leader)이는 서브 리더를, 진철(G, Guider)이는 인솔자를 맡기로 했고요.”

말 그대로 무전여행, 그들의 주머니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우편환 15000원과 엽서 400여 장이 전부였다. 엽서는 여행이 중반에 다다르기도 전에 동이 나 가족들은 그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지만, 우편환 15000원은 고스란히 진주로 가지고 왔다.

식사도, 잠자리도, 이동도 모두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처음에는 밥을 얻어먹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 서로 등을 떠밀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나중에는 숙련된 배우처럼 자동으로 멋진 대사가 나왔습니다. 밥을 잘 얻어먹을 수 있는 타이밍, 가장 따뜻하게 잘 수 있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지요.” 호화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우연히 들른 시골 마을 회갑잔치에서 배가 터질 만큼 대접받고, 소양강 댐에서 화려한 관광 유람선도 공짜로 탔다.

“나 그만 집에 갈란다”

늘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출발한 지 40여 일이 지날 무렵에는 대한민국의 밥이 전부 세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얻어먹고, 얻어 자는 것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여행이 후반에 접어들 무렵, 그들은 춘천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가정집에서는 저녁 식사가 한참일 시간이라 거절당할 위험이 컸으므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영업을 하는 가게에서 밥을 얻어먹는 것은 모험이었다. 각자 흩어져 다른 식당을 향했는데 S는 여기서 여행을 포기할 위기를 겪었다. “식당에 혼자 들어가는 게 처음이라 참 힘들었어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지저분한 차림을 한 내가 식당에 들어가니 주인을 비롯해 대여섯 명의 손님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지요.” 그는 주인에게 다가가 훈련된 대사를 읊조렸다. 등 뒤로는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고, 이윽고 얼굴이 달아오른 그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뭐요,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데 재수 없게! 보시오, 홀에 손님이 몇 명이나 있소? 가소!”

식사 후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니 두 사람은 식사를 하고 와 “나는 곰탕을 먹었는데 고기가 많이 들어 있더라.”, “나는 육개장 먹었다. 괜찮더라.” 했다. S는 하늘 보기가 부끄럽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는 이런 짓 그만두고 당장 내려가겠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식당에서의 상황을 설명하니 그보다 더 열을 내며 그의 역성을 들었다. 슬며시 분이 풀린 그는 두 사람의 격려 속에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들은 젊은 시절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진의 여성은 책에 등장한 그 시절 원통 유치원의 보모 소녀다.


“사람이 남더이다”

 

진주에서 출발해 하동, 순천, …, 대전, …, 서울, …, 강릉, …, 대구, …, 부산, …고성, 사천. 대한민국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진주로. 59박 60일간 방문했던 수십 개의 지역 중 세 사람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강원도의 ‘원통리’다. “얼마나 피맺힌 한이 어렸기에 원통리가 됐을까요? 원통(元通)은 사실 ‘근본을 알린다’ 또는 ‘아름다움을 알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명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반성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내겐 원통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지역이었어요.” C의 말이다.

사실 세 사람이 원통에 애틋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세 사람은 해가 저물 즈음에 그날의 잠자리를 찾기 위해 원통의 한 유치원에 멈췄다. 기웃거리는 그들을 보고 유치원 보모로 일하던 앳된 소녀가 그들을 유치원 교실로 안내했다. S는 유치원 어린이에게 소녀의 이름을 물었고, G는 유치원으로 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책을 출판하기 위해 떠난 유전여행에서 그들은 그 소녀를 찾아 감사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았다. 앳된 소녀는 중년을 훌쩍 넘긴 여인이 되어 있었다. “편지 받은 기억이 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방을 제공하는 일이 보상받을 일인가요. 당연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따뜻한 사람들의 손길 없이는 절대 여행을 끝마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보통 여행을 하고 남은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곳의 경치, 그곳의 음식 등 장소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렬하지요. 그러나 무전여행을 떠났던 우리에게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남더이다. 60일간 따뜻한 밥을, 포근한 잠자리를 선물해 준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여행을 무사히 마쳤고, 여행을 통해 세상을 사는 힘을 얻었습니다. 하루에 수 명, 어느 날은 수십 명씩 고마웠습니다. 우리의 희귀한 기록을 통해 여러분도 세상 사는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그들의 주머니에는 비상시를     ▲59박 60일 동안 전국일주 무전여행을 떠난 안명영·최진철
 대비한 우편환 15000원과 엽서 400여 장이 전부였다. 
     ·김동환 동문이 쓴 책 표지이다.   

  • 취재 사진 강소미 기자
  • - Copyrights ⓒ 경상대학교 신문방송사 -

목록

사이트 안내 및 정책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보공개
  • 네티즌윤리강령
  • 이메일집단수집거부
  • 교직원검색
  • 규정집
  • 교직원행동강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