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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은 아픔의 역사, 그 발자취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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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박물관 ‘일제강점지 진주’ 사진전을 다녀와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경상대박물관은 ‘일제강점기의 진주’ 사진전을 기획해 개최 중이다. 사진전은 오는 3월 31일(일)까지 진행되며 일제강점기 당시 진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세기가 지났지만 지워지지 않는 아픔의 역사. 사진전을 방문해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경상대박물관은 3·1운동 백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의 진주’ 사진전을 개최했다.


조국 독립은 오직 인재 양성에 있다

3·1운동 이후 민족의식과 교육열이 높아 가던 1919년, 경남의 유지(有志)들은 조국 독립은 오직 인재 양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순수한 민족 자본을 모아 일신재단(一新財團)을 세워 교육 사업을 전개하고자 했다. 1923년 10월 진주일신고등보통학교의 인가를 얻었으나, 남학교가 항일운동의 온상지가 될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설립안을 계속 보류했다. 결국 일신재단은 총독부와 타협하여 사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는 것으로 하고 남학교는 공립고등보통학교(현 진주중학교·고등학교)로 하게 되었다.

공립으로 설립되었으나 총독부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다. 진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1928년 7월 식민지 차별 교육에 항의하여 진주농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동맹 휴학을 벌인 것이다. 1930년 1월에는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동맹 휴학을 했다. 이후에도 독서회와 조직 사건 등에 여러 번 재학생과 졸업생이 연루되었을 만큼 지역 학생들의 민족의식은 강했다. 저항은 끊이지 않아 전시 체제기인 1938년 인고단련 시간에 교장의 연설 중 ‘일본’을 ‘우리나라’로 고쳐 외치는 한편, ‘황국신민서사’를 낭독할 때도 ‘황국’과 ‘군국’을 ‘망국’으로 고쳐 외친 11명 중 6명이 퇴학 처분당하는 ‘11인 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1941년에는 졸업생이 학교에 신위를 지낸 가미다나(神壇·일본 신들을 모시는 우상단지)를 파괴하는 사건도 있었다.

 
과거 진주중학교에서는 학생들에 의해 활발한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사라져 버린 진주의 가야왕릉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일본이 가야 지역을 정벌해 임나일본부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주장)’과 ‘일선동조론’을 증명하여 식민 지배와 강제 동원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수많은 고대 유적들을 파헤쳤다. 진주의 상징적 문화 자산인 ‘수정봉·옥봉고분군’도 문화재 조사라는 명목으로 파헤쳐져 도굴되었고, 천 년을 넘게 버텨 오던 가야왕릉은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 만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지금

‘친일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흑역사로 남은 그때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 친일의 잔재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진주문화원 추경화 향토사연구실장은 “그 옛날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난 당시에도 징벌과 포상을 확실하게 시행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에서도 독립유공자 1만 5천여 명에게 제대로 된 포상이 지급되고 있지 않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라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공로가 인정되어야 한다. 100년이면 3대가 지난 것이 아닌가”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2019년 봄의 문턱에서, 1919년 봄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 날을 떠올려 본다. 유난히도 추웠을 그 시기. 1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아직도 차갑기만 하다.

  • 취재 사진 손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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