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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에서 온 편지 ①] “윤선 씨도 다음에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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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는 프랑스, 스위스와 접경지대인 독일 서남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독일 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날씨가 흐리기로 알려진 유럽이지만 이곳은 독일에서도 가장 해가 많이 비치는 곳으로 환경이 청정하며, 인접 국가로 이동도 편리하다. 최근 국내 방송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3, tvN, 6회)’에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 한나 아렌트가 머물렀던, 유태인 학살을 반성하는 공간으로 이 도시가 등장하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 뿐아니라 하이데거, 막스 베버 등 우수한 학자들도 이곳 프라이부르크 대학(Albert-Ludwigs-Universität Freiburg)을 거쳐갔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자체도 유명하지만, 이외에도 여러 대학이 모여 있어 대학 도시로도 명성이 높다. 아울러 축구를 좋아하는 이에게도 프라이부르크는 익숙한 도시일 것이다. 분데스리가(Bundesliga)에 소속된 프로축구클럽 ‘SC 프라이부르크’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이곳에서 어학연수 중이며, 이곳 대학에 다니는 수많은 현지 친구들과 부대껴 살며 말과 문화를 배우고 있다.

내가 독일로 어학연수를 온 것은 이들의 삶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10대 초반부터 나는 독일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내 눈에는 독일이 교육이나 안전, 환경 등에 관해 우수한 정책과 이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비쳤다. 반면, 우리나라는 많이 뒤떨어진다고 감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살아 보니 어찌 보면 그저 장단점이 확연할 뿐,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앞섰다. 분명 배울 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배울 점만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 왔는지 이곳에서 실망한 적도 꽤 있었으니 말이다.

예고라도 하듯, 처음 독일에서 마주한 것은 인종차별인지 모를 불친절이었다. 해외 생활이 처음인 내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떨리는 마음으로 입국 심사대 앞에 섰는데, 내 차례가 되자 직원은 눈도 안 마주치더니 여권을 확인하고는 던지듯이 내어 준 것이다.

지금은 프라이부르크 최고 어학원이라 불리는 ‘슈프라헨콜렉’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현지 문화를 체험하기 최적의 장소인 학생 기숙사 ‘알반하우스(St. Alan Haus)’에있지만, 처음 독일에 왔을 때는 비자도, 집도, 학원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출국 몇 개월 전부터 100만원 가량 돈을 주고 예약한 어학원으로부터 불과 출국 일주일 전 파산했다는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학연수 준비 과정은 이렇다. 아무래도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유럽은 학생 신분으로는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재학 중 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를 첫째로 고민했다. 처음에는 우리 대학에 있는 교환학생 제도를 통해 나갈까 생각해 봤지만, 선발 인원이 적고 자격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데다, 생활비가 따로 지원되지 않아 이를 위해 휴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교외 장학재단을 통해 방법을 찾게 됐다.

그 과정에서 ‘꿈미래상담’도 도움이 됐다. 1학년 때부터 나는 이 시간에 근근이 교수님들께 고민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고, 실제 독일 유학 경험이 있는 교수님으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참고해 독일에서 내가 머무를 도시와 어학원을 정한 뒤 장학재단에 지원했다. 대도시가 아니기에 프라이부르크 어학원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 4월부터 어렵사리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했다. 그런데 웬걸, 출국 한 달을 앞두고 독일 변호사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용인 즉, 해당 어학원이 파산했다는 것이다.

이후 어학원에 메일로 직접 연락을 했다. 처음 보낸 메일이 무시당하고, 두 번째 보낸 메일에서는 문제없다고 하더니 나중에서야 파산에 대한 사실을 전했다. 사기를 당했나 싶었다. 당시 큰 문제는 내가 무비자로 출국을 하는데 어학원을 등록하지 못하면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는 모든 돈을 반환하고 한국에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학원 측에서 일단 다른 장소에서 수업이 가능하고, 숙소도 구해 놓는다고 하니 한번 가 보고 아니면 도시를 옮길 생각으로 작년 8월 말, 예정대로 출국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알고 보니 그 어학원 선생은 10년이 넘게 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난민들이 대규모로 해당 어학원에 등록했고 학원 규모를 늘렸더니, 갑자기 환불을 요구해 파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여기서 난민에 관한 이런 저런 문제도 알게 되었는데, 현지에 오면 내가 예상치 못한 정보를 알게 된다는 점도 큰 재미가 아닌가 싶었다. 이후 나는 이곳 한인교회에 다니며 알게 된 지인의 도움을 받아 비자를 받았고, 어학원과 기숙사 등록을 무사히 마쳤다.

사실 나는 영어도, 독일어도 거의 못하는 상태로 이곳에 왔다가 도움을 받아 정말 운 좋게 최상의 조건으로 정착한 경우다. 그리고 외국어를 거의 못하는 나는 한동안 도움 밖에 받지 못했다. 처음엔 이런 내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는데, 나를 도와 준 한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도움을 받았어요. 다 도움 받고 시작한 거니 윤선 씨도 다음에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주면 돼요.”

이렇게 도착한 곳에 무엇이 있었을까? 다음 호에서는 실제 독일 친구들과 함께 살고, 여행을 통해 느낀 독일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최윤선 철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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