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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없는 주제에 착하기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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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SKY캐슬>의 등장인물 ‘혜나’의 삶은 비참했다. 혜나는 어린 나이에 엄마의 병원비를 벌며 소녀가장으로 살아갔다. 엄마의 죽음 후 찾은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를 몰랐고, 혜나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라이벌의 아버지였다. 혜나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 자체가 골칫거리라는 말을 들은 그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 고작 열아홉 나이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토록 불행한 삶을 살다 간 혜나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는 어떨까? 놀랍게도 혜나를 미워하는 시청자는 적지 않은 듯하다. 욕심이 많고 영악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혜나만큼 욕심을 부리는 라이벌에게는 관대하다. 가난한 아이의 욕심은 용납할 수 없지만 부잣집 공주의 생떼는 사랑스럽다. ‘쟤는 없는 주제에 착하기라도 해야지.’

이렇듯 약하고 가난한 이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 요구는 현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후원 중단하겠다. 선물로 휴대폰이나 컴퓨터 말고 요새 유행하는 롱패딩을 사 준다고 했더니 20만 원짜리 브랜드를 골라 왔다. 피아노 학원도 다닌다고 하는데 그다지 사정이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는 어느 지역복지센터에 걸려 온 전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아이들이 프랜차이즈 일식집에서 돈까스를 시켜 먹었다. 둘이서 하나를 나눠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분식집에서 먹어도 똑같이 배부를 일을 굳이 좋은 곳에서 기분 내며 먹을 일이냐. 내 세금으로 낸 돈 아닌가.”

우리는 약자가 우리의 생각보다 ‘덜 약한’ 행동을 하면 왠지 모를 불쾌함을 느낀다. 약하고 가난한 이는 자기주장이 강해서는 안 된다. 안쓰럽고 얌전하게 보여야 한다. 가난이 가진 1차원적인 이미지다. 가난한 이에게는 제3자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행복만 허락되는 사회. 이는 대중매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빈곤포르노’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빈곤포르노란 자신에 대한 초상권 및 인권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자극적으로 묘사해 모금을 호소하는 광고를 일컫는 말이다. 국제적으로 자선 캠페인이 급증한 1980년대에 생겨났다. 현재는 가난을 선정적으로 묘사한다는 의미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빈곤포르노는 가난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지난 2017년 6월 서울시의 한 구청이 쪽방촌을 대상으로 대학생 체험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쪽방촌에서 2박 3일간 생활하며 봉사 활동을 하고 지역민들의 어려움을 공감해 보자는 취지라 밝혔다. 논란이 계속되었고 행사는 결국 취소됐다. 하지만 주민들의 마음에는 상처가 남았다. 가난은 구경거리로 소비되어선 안 된다.

가난을 단순화한 이미지는 위험하다. 가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가 스스로 ‘내가 이런 것을 해도 될까?’ 하고 자신을 검열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약자에게 행복 상한선을 두어서는 안 된다. 주제넘은 행복은 없다. 신경림 시인은 말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은 포르노가 아니다. 혜나의 욕심은 주제넘은 일이 아니다.

강소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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