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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대] 사회 안정성은 개인 불안정성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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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원약사이다. 1000 병상이 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한다. 어린이병원, 재활병원, 치과병원 그리고 한방병원까지 명절 종합선물 세트 같은 규모를 갖춘 병원이다. 게다가 국립대학병원이다. 국립대학병원 설치법에 의하면 국립대학병원 설립은 ‘고등교육법’에 따른 의학 등에 관한 교육·연구와 진료를 통하여 의학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곳에도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있기 전에 파견직, 계약직, 무기 계약직과 같은 반(半)규직, 비(非)정규직, 무(無)규직의 형태가 존재했다. 병원은 주로 배송을 담당하는 직종을 케이텍맨파워라는 인력 알선 업체에서 파견직 형태로 2년간 고용했다. 2년이 지나면 일부 파견직은 병원과 직접 계약했고 4년간 계약직으로 일했다. 4년이 지나면 병원에서 면접을 보고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

지원직이라고 불렸던 비(非)약사 직종은 파견직 형태로 간접 고용되었다. 파견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가 근무한 만 3년 동안 계약직에서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2명이었다. 간접 고용 형태라 근로 시간에 비해 월급도 적었다. 나이트 근무와 주말 근무에 지친 지원직들은 연거푸 퇴사했다. 지원직은 너무 자주 바뀌었고 이에 따라 업무의 비효율성이 심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입 지원직 교육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20대였다. 근무하는 약사들과 연령대가 비슷하여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하곤 했다.

‘전환’ 이후 지원직은 원무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원무직은 사학연금 가입도 가능해졌다. 케이텍맨파워와 약제부 두 곳의 이중 인사 체계로 혼란만 가중시켰던 고용 형태는 병원 직접 고용으로 좀 더 단순화되고 체계화되었다. 이곳은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며, 최상의 교육, 연구, 진료로 인간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한다’는 미션을 두고 있다. 근 10년간 조직원들의 불안정성은 미션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했을 것이다. 2014년 4월 24일 연세대 정치학과 박명림 교수는 ‘한겨레’ ‘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에서 분노했다. 그가 분석한 한국적 삶은 60명도 되지 않는 부서에서도 나타난다. ‘각자 도생하기 바쁜 상태가 도래한 한국적 삶은 양극화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만약 우리가 이 불안정성을 깨뜨리기 위해 일찍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박명림 교수의 말로 대신하겠다. ‘청년들은 이 못난 세대, 불행한 조국의 현실을 기필코 혁신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나라를 발본적으로 뜯어고치라. 이 패덕의 세대, 야만의 국가를 부디 광정하라.’

손성은 약학과 1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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