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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70주년 특집] 33년 간 공직 지키게 만들어 준 ‘농학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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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前) 경상남도 행정부지사 한경호(농학과 1985년 졸업) 동문

부모님은 진주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장남이라 이것저것 욕심내기가 어려웠다. 다행일까? 그는 화려한 것보다 소박하고 순수한 것이 좋았다. 소탈한 성격이었다. 땀 흘린 만큼 거둘 수 있는 농업이 좋았다. 그래서 농대에 갔다. 이 악물고 공부해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땀 흘린 결과를 얻었다. 가난한 소년은 경상남도의 행정부지사가 되었다. 우리 대학 농학과 한경호 동문의 이야기이다.




한경호 동문은 1984년 제20회 기술고등고시 합격 후 지난 8월까지, 33년 동안 공직을 지켜왔다. 

“자네, 기술고시 도전해 보지 않겠나?”

한 전 부지사는 자신을 참 복 받은 사람이라 소개했다. “대학에서 남긴 가장 큰 자산은 교수님들과의 인연입니다. 교수님들의 지원과 조언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엄격한 규율 속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그에게 대학의 자유는 지나치게 달콤했다. 정신없이 놀던 어느 날 김석현 교수님의 호출이 떨어졌다. “자네 이제 어떡할 건가. 기술고시 한번 도전해 보지 않겠나? 한경호 자네는 하면 반드시 될 것이네.” 자유를 만끽하던 중에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그에게 떨어진 교수님의 따끔한 충고는 그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교수님들이 저를 얼마나 배려해 주셨는지는 제가 당시 어디서 지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본인 학과 교수였던 작고한 빈영호 전(前) 총장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공부했다. 이처럼 당시 농학과 교수들은 공부를 시작한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 때문일까. 그는 4학년이 되던 해, 제20회 기술고시에 합격했다.



지난 3월 한 동문이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 및 인산죽염 항노화 지역특화농공단지 등을 방문해 항노화 산업에 대한 현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경상남도청]

1인 3역 업무,
벅찼지만 보람돼

한 전 부지사는 지난해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사퇴 이후 8월 경상남도 행정부지사로 취임해 10개월 동안 권한대행을 맡았다. 이는 최장기 권한대행 기록이다. 또한 조규일 전 서부부지사의 퇴임으로 도지사와 행정부지사, 그리고 서부부지사까지 ‘1인 3역’을 소화했다. 업무가 벅차기도 했을 것인데, 도민에게 헌신한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즐겁게 일을 해냈다.

그가 무엇보다도 자부심을 갖는 분야는 행정 개혁이다. “행정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홍 전 지사 시절의 공급자 중심 행정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꿨습니다. 불통을 소통으로 바꾼 것이지요. 도의 일방 행정을 민관 협치로 바꿨습니다.” 그는 저소득층·장애인·노인·아동·여성 등 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기구인 ‘도민행복위원회’를 신설했다. 주제별로 7개 행복분과위원회를 두어 각 대상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컨대 장애인분과위원회에는 장애인이 직접 참여하지요. 제가 추진한 업무 중 가장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도민행복위원회와 더불어 참여 도정을 대표하는 기구는 ‘도민안전제일위원회’다. 지난 1월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가 계기였다. 공무원과 민간인이 함께 이끌어가는 안전위원회는 민간에서 실현 가능한 정책을 개발하고 평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행정의 기본은 주민 안전을 책임지는 것 아닐까요? 밀양 화재는 제게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그 사건 직후 도정의 중심을 안전으로 규정하고, 도민안전제일위원회를 꾸리는 한편 도에 안전 업무를 전담하는 안전 점검단을 구성했습니다. 안전의 해법은 사전 예방입니다. 안전상설점검단은 취약 지구를 상시 점검합니다.”


그는 이처럼 권한 ‘대행’에 걸맞지 않은 ‘파격 행보’를 보이며 열린 도정, 참여 도정을 이끌어 냈다는 호평을 받았고 장장 10개월간의 권한대행 역할을 마무리했다.


33년 간 공직 지켜온
배경과 청년에 대한 공감

그는 1984년 제20회 기술고등고시 합격 후 지난 8월까지, 33년 동안 공직을 지켜왔다. 굳건히 공직을 지킬 수 있었던 한 전 부지사만의 철학은 무엇일까?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합니다만, 저는 순수한 성격입니다. 농사짓는 것은 단순하지만 기승전결이 있습니다. 성실히 파종을 하고 풀을 베고, 물과 비료를 주고, 해충을 쫓으면 수확을 합니다. 나는 농사짓는 사람처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공직 생활을 했어요.” 그는 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공직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던 배경이라 밝혔다.

그의 최근 관심은 공직을 떠난 후 거취이다. 그리고 그 고민은 청년에 대한 공감을 낳았다. “저도 취직을 준비하는 두 자녀를 둔 아버지입니다. 아이고, 참. 요즘 청년들 앞이 캄캄합니다. 미안하고, 안타깝습니다. 살이 되는 이야기는 다른 분이 많이 해 줄 테니 저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청년이 힘든 것은 시대를 초월해서 늘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때가 되니까 다 자기 길을 찾더군요. 너무 기죽지 마세요. 어깨 쫙 펴고 살아요. 취업 못 하고 힘든 거, 다 청춘들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힘들어서 그래요. 그러니 몽땅 세상 탓하고, 우리 이제 툭툭 털고 일어납시다.”

  • 취재 강소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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