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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70주년 특집] ‘개척의 길’ 70년, 과거를 되새기고 미래를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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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20일(토)로 우리 대학은 개교 7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 대학은 지난 15일(월)부터 오는 19일(금)까지 ‘70주년 특별 주간 행사’를 운영할 만큼 개교 70주년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경상대신문사에서도 개교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캠퍼스, 그 시작과 현재’, ‘우리 대학의 여러 상징’, ‘역사 속으로 사라진 캠퍼스의 한 조각’ 등이 그것이다. 아울러 10년, 20년, 30년 등 장기 근속상을 받은 교수와 직원 6명이 추억하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보자. 이 지면을 통해 천 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딘 우리 대학 개교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 ‘개척’의 첫걸음, 그 시작과 현재

‘개척’의 첫걸음, ‘진주농과대학’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학은 1948년 진주시 칠암동에서 ‘경남도립 초급 진주농과대학’으로 시작했다. 농학과 하나로 시작하여 기존 진주농림학교의 건물과 시설 일부를 빌려 강의 공간을 확보했고, 10월 20일에 개교와 함께 신입생 38명이 입학했다. ‘경남도립 초급 진주농과대학’은 국내 산업에서 농업 비중이 높았던 시대 상황을 가늠케 한다.

20년 후인 1968년 3월 1일 ‘진주농과대학’은 본래 경남도립 학교였으나 당시 정부가 새로운 교육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국립대로 성장하게 된다. 지금의 칠암캠퍼스로 대학 본부를 옮길 때 경상남도에 국립대는 부산대밖에 없었는데, 부산시가 성장을 거듭하며 광역시로 경상남도에서 분리되어 경상남도에만 국립대가 없었다. 부산광역시가 분리된 이후 경상남도는 재정적으로 빈곤해져 도립대학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우리 대학은 서부 경남의 중심지인 진주에서 농과대학으로서 전통과 교육의 중심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주농과대학’이 경남의 국립대로 확정된다. 이듬해인 1969년에 당시 대통령의 ‘대학생 정원 개정령’에 따라 개교 이래 20년간 계속 단과대학이던 진주농과대학이 교육 학부를 포함한 복수대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교명도 ‘경상대학’으로 변경한다.

1978년 10월에 학과를 증축하면서 ‘경상대학’ 이전 계획을 위한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같은 해 교육부에 의해 이전 계획을 승인받는다. 그리고 우리 대학과 교육부 관계자, 전국의 전문 교수들로 구성된 종합심의위원회가 발족해 7월부터 9월까지 심의를 거쳐 ‘경상대학교 종합대 기본 계획 보고서’를 교육부에 제출하여 현재의 가좌캠퍼스로 대학 본부를 옮긴다. 2년 후 1980년 ‘경상대학교’는 성공적인 학과 증설로 농과대학, 사범대학, 인문대학, 법경대학, 이공대학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발전했다.


현재 우리 대학은 가좌캠퍼스에 대학 본부 등 주요 단과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칠암캠퍼스에 의과대와 간호대, 대학병원이 있고 통영캠퍼스는 해양과학대 소속 학과들로 구성돼 있다. 기획평가과 문성수 주무관은 “우리 대학의 시초는 ‘경남도립 초급진주농과대학’으로 그때부터 점차 발전해 현재 모습을 갖췄다. 개교 70주년을 맞이한 현재에도 우리 대학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 대학이 지금보다 더 앞서 나가는 대학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1956년 도립 진주농과대학 시기 캠퍼스 전경이다.

‘농학과’, 최초로 설립…
‘유아교육과’ 가장 최근 개설


우리 대학에 최초로 개설된 학과는 개교 당시 유일한 학과였던 ‘농학과’이다. 이후 임학과, 축산학과와 수의학과가 증설됨에 따라 모집 인원도 확대되었다. 이후 1968년 농화학과 교직 과정이 추가되었고, 다음 해에 수의학과에도 교직 과정이 추가되었다. 1970년대까지 농학부인 농과대학과 교육학부인 사범대학 등 사실상 2개의 단과대학을 운영하면서 종합대학의 기반을 갖춘다.

가장 최근에 신설된 학과는 2013년 개설된 ‘유아교육과’이다. 이 학과는 2013년 5세 누리과정 전면 도입으로 유치원 교사의 수요가 증가할 것을 예상해 기존의 가정교육과를 전환한 것으로 유아 교육 관련 전문 지식 습득 및 유능한 유아 교육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한다.

가장 최근에 신설된 일반대학원 학과는 2018년 개설된 ‘산업경영학과’이다. 최근 기업의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 학과는 이러한 변화를 예측 및 분석하고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개설되었다. 산업경영학과는 기업체 재직자를 대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론과 실무 능력을 갖춘 경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취재 강도희 기자




가좌캠퍼스 교문 오른 편에 세워진 ‘개척탑’은 개척 정신을 정통의 흐름으로 삼고자 건축되었다.

개척(開拓) 시를 읽고 느티나무 길을 걸어 볼까?


“짧게 살고도 오래 사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개척자이다. 그의 눈은 앞을 보는 눈이요. 그의 가슴에는 보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는 무슨 일을 남기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 그대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언제나 이것을 묻기 위해 이곳에 서 있노라.”

이것은 가좌캠퍼스 교문 오른 편에 세워진 ‘개척탑’에 새겨진 시다. 사범대 국어교육과 려증동 명예교수가 지은 것으로, 대학의 교훈인 개척(開拓) 정신을 잘 풀어서 알기 쉽게 나타내었다. 우리 대학의 대표 상징물 가운데 하나인 ‘개척탑’은 개척 정신을 전통의 흐름으로 삼고자 건립된 건축물인데, 탑의 건립은 학생회 회의로 공식화 되었고 당시 학생회 간부들이 기금을 마련해 1973년 7월 11일 준공됐다. 개척탑은 우리 대학 칠암캠퍼스에 처음 설치되었지만, 탑의 노후화와 열악한 주위 환경 때문에 지난 2012년 2월 가좌캠퍼스 정문 경비실 서편 녹지 내로 이설됐다.

우리 대학 정문을 들어서면 쭉 펼쳐진 나무를 볼 수 있는데, 바로 교목인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흔히 길고 곧게 뻗어 있어 정자나무로도 불린다. 우리 대학이 ‘느티나무’를 교목으로 선정한 이유는, 느티나무가 민족의 얼과 역사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느티나무는 늠름하고 꿋꿋한 기상과 장엄한 수형, 굳센 저항력으로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개척인의 진취적 기상과 대학 본연의 이념 추구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지난 2011년 우리 대학 내 농생대 식당의 새로운 운영자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나서면서 카페와 편의점을 갖춘 복합 공간 ‘느티마루(Zelkova)’가 문을 열었다. 이곳의 이름은 교목인 ‘느티나무’에서 따왔다. 이 외에도 ‘느티나무길’, ‘느티마루’ 등 학내 곳곳에서 느티나무와 관련된 명칭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개척탑’과 ‘느티나무’는 캠퍼스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상징 중 하나다.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존재 자체도 모르고 졸업할 수 있다. 좋은 계절 10월, ‘개척탑’을 찾아가 개척(開拓) 시를 읽고 느티나무 길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


취재 조아름 기자


우리 대학 정문을 들어서면 교목인 ‘느티나무길’이 펼쳐진다. 길고 곧게 뻗은 ‘느티나무’는 개척 정신과도 잘 어울린다.

■ 
역사 속으로 사라진 캠퍼스의 한 조각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깔깔 웃는 새내기들, 팔짱을 끼고 거니는 연인들, 햇살을 받으며 과제하는 학생들까지… 도서관과 학생회관 사이에 자리한 잔디광장은 오늘도 붐빕니다. 개척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광장에 불과 4년 전만 해도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1996년 9월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민주광장(현 잔디광장)’으로 불린 이곳에 중앙분수대가 설치됩니다. 민주광장은 80년대 경남 지역의 학생운동 집회지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더 이상 학생운동이 필요치 않은 때가 되자, 민주광장은 학생들의 복지와 휴식을 위한 공간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그 모습을 탈바꿈합니다. 새롭게 설치된 중앙분수대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솟아난 물줄기가 남강을 지나 바다로 흐르는 모습을 형상화해 우리 대학의 부상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유지 비용과 악취 등으로 속을 썩인 중앙분수대는 2011년 7월 발생한 집중 호우로 고장 난 채 수년간 방치됩니다. 그 후 2014년 10월 철거 공사가 시작돼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고 현재의 광장 형태로 다시 개척인 앞에 섰습니다.


1996년 9월 ‘민주광장(현 잔디광장)’으로 불린 곳에 중앙분수대가 설치되었지만 유지 비용과 악취로 2014년 10월 철거되었다.

캠퍼스의 한 조각 추억으로 남은 것은 중앙분수대뿐만이 아닙니다. ‘성폭력·성희롱 문제를 철저히 예방 및 처벌합시다.’ 교내에 여전히 남아 있는 2004 피어나라 총여학생회의 바른 성문화 의식 확산 운동 스티커, 한 번쯤 본 적 있을 겁니다. ‘왜 지금은 총여학생회가 없을까?’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나요?

유신 독재하에 폐지되었던 학생 자치기구 ‘총학생회’가 1985년 부활함에 따라 ‘총여학생회’의 역사도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대학 총여학생회는 제1대 이명옥(가정교육과 3) 학생을 시작으로 여학생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 또 증진하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하지만 2016학년도 학생회 선거 당시, 출마자의 부재로 선거를 진행하지 못했고, 대의원총회에서 공식 해산이 결정됐습니다. 이렇게 우리 대학 총여학생회는 제31대 어울림 총여학생회를 끝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대신, 총학생회의 산하 기구 ‘여학우국’이 총여학생회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70년의 역사를 쌓아 온 우리 대학은 천 년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분수대와 총여학생회처럼, 앞으로도 캠퍼스에는 수많은 추억이 쌓이고 또 스러지며 우리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하겠지요. 오늘 하루, 캠퍼스 곳곳을 거닐며 언젠가는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를 익숙한 풍경을 마음속 깊이 담아 두는 것은 어떨까요?

취재 강소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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