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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허수경 시인의 작품 세계 되짚기] 유목의 상처, 그리고 글로벌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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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h.yes24.com]

1. 허수경은 누구인가


허수경은 1964년 진주 출생으로 우리 대학 국문과를 제2회로 졸업했다. 1987년 ‘실천문학’으로 데뷔하여 시집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을 내었다. 그러면서 그는 소설집, 산문집을 내고 동화를 썼으며 1992년 가을부터 독일로 유학을 가 뮌스타대학에서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최근 독일에서 54세의 일기로 돌아간 이른바 대형 작가였다.

이 글에서는 시 읽기를 하되 아시아출판에서 나온 ‘허수경시선’을 중심으로 2016년 판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덧붙여 텍스트로 삼았음을 밝힌다.

2. 혼자 가는 길

허수경 시인은 출신이 ‘실천문학’ 쪽이 되어서 그냥 ‘시대 현실’이나 ‘저항시 지향’이리라는 예단을 할 수 있는데 첫 시집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시 전반을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에서의 표제 시인 <혼자 가는 먼 집>을 보면 시는 나와 당신과의 관계에서 당신의 부재를 노래했는데 슬픔과 상처가 자연이 될 정도임을 말하고 있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이라 하여 참혹하면서도 ‘킥킥’이라는 것이 여유와 자조적인 표현이다. 혼자 가는 길은 단독자의 길이고 존재이고 단풍이고 마음의 무덤이 그 길인 것이다.

<불취불귀(不醉不歸)>에서는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인생의 길이다. <공터의 사랑>은 사랑의 방식이 공터이고 허무라는 인식이다. 허수경은 이렇게 초기부터 존재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늪이 인생 이행의 제1장 제1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3. 가을 공원과 유목의 상처

화자는 가을 공원을 거닐기를 즐기지만 술병 들고 있는 늙은 남자와 상처진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만난다. 공원 뒤편에는 수도원이 있고 병원이 따로 있어서 그림자 지고 울음이 있는 수술대를 생각하고 기차표를 찢는 외로운 사람이 당신임을 안다. 내 유목의 상처는 드러나고 나는 공원을 두고 나온다는 것인데, 공원은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오는 곳 아닌가.

공원을 두고 보면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여행을 따로따로 하고 돌아온 로캉댕과 안니가 만나 포옹하지만 “내가 이 사람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하고 헤어진다. 그러나 시에서의 나는 당신이 외로운 사람임을 확인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단계까지 가지 않고 있다. 상처는 상처 그대로 가져가고 있을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흰 꿈 한 꿈>에서 “혼자 대낮 공원에 간다 / 술병을 감추고 마시며 기어코 말하려고 / 말하기 위해 가려고 그냥 가는 바람아 내가 가엾니?” 이 상황을 화자는 ‘검은 무덤’, ‘취중 고통’으로 말한다. 그리고 끝에서 “햇살은 기어코 나를 쓰러뜨리네”라고 맺는다.

4. 글로벌 블루스와 고향 건설

허수경 시인의 시는 <글로벌 블루스 2009>에 와서 그의 유목민적 대륙의 세계가 완성된다. 유목민이란 그의 떠돌이 인생을 집약한 말이고 독일 유학의 길과 그쪽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패턴화한 것과 유관하다. 그러나 허 시인은 이 시에서 장엄한 글로벌 블루스를 노래하며 그 위용을 드러내 준다.

“울릉도산 취나물 북해산 조갯살 중국산 들기름
타이산 피쉬소스 알프스에서 온 소금 스페인산 마늘
이태리산 쌀


가스는 러시아에서 오고

취나믈 레시피는 모 요리 블로거의 것


독일 냄비에다 독일 밭에서 자란 유채기름을 두르고

완벽한 글로벌의 블로스를 준비한다”


 - <글로벌 블루스 2009> 부분


인용 시는 글로벌 블루스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데 전 세계 생산물과 가스 등을 기반으로 하여 취나물을 볶는다. 이름하여 글로벌 블루스다. 음악으로서의 블루스는 흑인 영가인데 그것에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음악이 섞여 들어 블루스가 되는 것처럼 화자의 세계적 체험 요소들이 섞여서 완벽한 고향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시인 허수경의 글로벌 체험이 글로벌 블루스가 되고 새로운 완벽의 고향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이었고 자발적인 유배라고 천명한다. “세계의 중심에서 변방까지 불선택의 블루스가 흐르는 삶과 죽음까지” 포괄하는 장대한 내면이요 고향 건설이다. 허수경은 이렇게 세계를 디자인하고 고고학적 기층들을 얽어서 새 세계와 고향을 창조하는 장엄한 작업을 이룩하고 있다. <비행장을 떠나면서>를 보아도 이런 기미가 보인다. 21세기의 슬픔과 불안을 대륙 건너기의 방식으로 해소하려는 드라마 같은 시편들! 그러므로 허수경은 단순한 디아스포라 정서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고 만들기의 세계다.

5. 세월의 고고학적 탐색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은 시로서 쓴 근대의 해석이다.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무지한 세월이고 무지한 군림이고 마치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들이 차가운 심장으로 지나갔다는 것이다. 벌써 전설 같은 세월이 근대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시인이 긴 세기를 고고학적으로 캐며 들여다본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인의 정서적 구도 속에는 ‘나와 당신 그리고 꽃’이라는 3자 구도가 요지부동이다. “태어나는 꽃은 그래서 무서웠죠. 당신은 없었죠, 다만 새소리가 꽃의 어린 몸을 만져 주었죠” (그 그림 속에서) ‘나’가 ‘꽃’이고 ‘꽃’이 ‘당신’인데 그 탄생의 시차는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당신’의 부재를 극복하고 공간과 시간을 늘이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는, 그것의 자유자재가 시다.


6. 마무리

마지막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의 첫 시가 <농담 한 송이>다. 윤동주의 <서시>격이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 끝끝내 서럽고 싶다 /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 살고 싶다” 극서정시라 할 수 있다. 너무 아리고 슬픈 삶을 말하지만 그 격의 무게는 실로 무겁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이 오히려 눈물겹다. 아름답다.                             


강희근 시인·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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