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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무지개 파도’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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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 윌리엄스 연구소의 갤럽 조사에 의하면, 미국 인구의 3.5%가 스스로 성 소수자라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성 소수자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에 의해 커밍아웃하지 않고 살아가는 성 소수자의 비율은 82%다. 그동안 몰랐을 뿐 성 소수자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성 소수자와의 공존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한국 퀴어 영화제’ 등 성 소수자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문화적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퀴어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직접 부산퀴어축제 현장에 다녀왔다.



국내 퀴어 영화 가운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것은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 사이?(Just Friends?, 2009)’이다. 이 영화는 혈기왕성한 게이 청년들의 연애를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성 소수자와 무지개 깃발

성 소수자, 퀴어(queer). 이는 사회적 다수에 속하는 이성애자와 대비되는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신체 등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다. 성 소수자의 범위는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양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간성, 제3의 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LGBT’는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가 합쳐진 말로, 제한적인 성 소수자 수용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성 소수자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로 ‘퀴어(queer)’가 등장했다. 퀴어는 ‘이상한, 색다른’ 등을 뜻해 성 소수자에 대한 비하의 의미로 쓰였으나, 지금은 그들을 의미하는 단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무지개기’는 성 소수자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LGBT에서의 무지개기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존엄과 성 소수자 운동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세계 최초로 미국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이후 무지개 깃발 물결은 성 소수자 집단에서 꾸준히 활기를 띠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하비 밀크의 의뢰로 탄생한 무지개 깃발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아티스트 길버트 베이커(Gilbert Baker)가 디자인했으며, 1978년 6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이 프리덤 데이 퍼레이드(Gay Freedom Day Parade)’에서 최초로 사용됐다.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 하비 밀크는 미국에서 동성애자로서 최초로 선출직 공직자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한국퀴어영화제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성소수자의 인권과 문화 증진을 위해 2001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

퀴어, 영화로 말하다

국내 퀴어 영화 가운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것은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 사이?(Just Friends?, 2009)’이다. 김 감독이 구청의 동성 혼인신고 불(不)수리 처분에 불복하여 2015년 ‘한국 최초 동성혼 재판’의 대상자가 되는 등 국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켜 한동안 국민들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했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는 혈기왕성한 게이 청년들의 연애를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려 낸다. ‘씨네21’은 “이 영화에는 감독 특유의 명랑한 성향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지만, 마냥 가볍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편, 2001년부터 매년 국내에서는 ‘한국퀴어영화제(KQFF·KOREA QUEER FILM FESTIVAL)’가 개최되고 있다. 영화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주최하고 한국퀴어영화제기획단이 주관하며 성소수자의 삶을 밀도 있게 바라보는 것을 지향한다.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성소수자의 인권과 문화 증진을 위해 매년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 올해 18회를 맞이했으며 지난 7월 19일부터 22일까지 ‘퀴어의 창을 열다’라는 기조와 ‘퀴어한 삶들에게 (Dear Queer Lives)’라는 슬로건으로 24개국 72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취재 이정민 기자




“퀴어는 존재한다, 우리는 여기 있다”

- 부산 퀴어문화 축제 현장을 가다

지난 10월 13일 부산 해운대 구남로 광장에서 경찰의 두 줄을 기준으로 두 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부산 퀴어 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역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혐오 세력의 집회와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현수막이었다. 혐오 세력 집회의 이름은 ‘레알 러브 시민 축제’였는데 진정한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뿐이라는 뜻으로 집회 이름에서부터 퀴어 혐오를 담고 있었다. 이들을 지나쳐 퀴어 문화 축제장으로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성경을 읊는 소리는 울려 퍼졌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축제장의 사람들은 외부 환경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오히려 반대편을 향해 함성을 지르며 무지개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퀴어 축제의 한 참가자는 “퀴어 문화축제에 세 번 가봤는데 그때마다 보는 모습이라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응은 꿋꿋하게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는 거라 생각해요. 날도 추운데 저분들도 고생이죠”라며 웃음을 지었다.

축제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성 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인 만큼 연인과 팔짱을 낀 채 축제를 즐기는 성 소수자 커플도 제법 보였다. 드레스를 입고 축제에 참여한 미국인 레즈비언 커플에게 말을 걸었더니 “Honeymoon”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에 저항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랑의 결실을 본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단체들도 많았다. 인권운동 단체, 전국 퀴어 문화 축제 본부, 성 소수자 연합 등에서 공간을 마련해 이들을 후원하기 위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상품의 대부분은 무지개 무늬가 있거나 연대의 메시지가 담긴 스티커, 포토카드, 액세서리 등이었다. 부산 지역과 몇몇 다른 지역 대학의 성 소수자, 페미니즘 동아리에서도 깃발을 만들거나 부스를 열어 이들과의 연대에 동참했다. 특히 ‘캠퍼스 페미 네트워크’라는 부산 지역 대학 내 페미니즘 모임 연합체는 행진 지원 차량 3대 가운데 한 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홍보관 행사와 무대 공연까지 마친 후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약 2km 정도 거리 행진이 이어졌다. 구남로 광장에서 동백을 거쳐 다시 구남로 광장으로 돌아오는 길로, 참가자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는데 시민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행진 무리를 보고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빙빙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응원 구호를 복창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퀴어에 대한 응원과 혐오의 시선이 뒤섞인 곳에서 축제 참가자 모두는 목이 터져라 “퀴어는 존재한다, 우리는 여기 있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누군가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부산 퀴어 문화축제는 행진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지만, 그 직후 부산 구청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 퀴어 총궐기’가 열렸다. 성 소수자 부모 모임의 라라 회원은 “저는 기독교 신자지만 트랜스젠더인 아들을 지지해요.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이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잖아요. 하나님 앞에 다 똑같은 인간인데 성 정체성 때문에 누군가는 차별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얘기했다.


서울 퀴어 문화축제에서 시작된 ‘무지개 파도’가 광주로, 부산으로, 제주로 점차 퍼지고 있다. 축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이 파도가 언젠가 모두에게 닿아 성 소수자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기도했다.


부산 퀴어 문화축제는 행사 반대자 집회와 함께 진행됐다.


취재 사진 이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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