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가기 메뉴



[광복 73주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픔의 기억을 쫓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마주한 과거의 오늘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터
지난 8월 14일은 제1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 날’이었다. 기림의 날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올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8월 14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울러 일제 강제 동원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자 2015년 부산에 세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다녀왔다. 광복 73주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픔의 기억을 따라가 보자.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부산광역시 남구에 있다. 이곳은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기리고자 설립되었는데 위치 선정부터 아주 뜻깊은 이유가 있다. 일제 강점기, 항구 도시 부산은 일본에 물자를 조달하기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이 때문에 물자뿐만 아니라 많은 인력이 일본을 비롯한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등 강제 동원 지역에 넘어갔다. 부산은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곳이다.

산 중턱에 있는 역사관에 가까워지자 건물 외관과 역사관의 로고가 먼저 눈에 띄었다. 로고는 과거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 사이를 운항하는 연락선인 ‘부관연락선’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역사관으로 들어가 전시실 1관인 4층 상설 전시실로 향했다. 그곳은 강제 동원의 역사와 사례, 그와 관련된 흔적들이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죽을지 살지 모르는 길을 떠나는데... 발길이 안 떨어져.’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로 끌려가는 노동자들의 심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기억의 터널’에 걸어 들어가자 가장 먼저 흑백 가족사진이 보였다. 사진의 크기는 마치 실제 사람의 크기와 비슷하여 사진 속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 가족 사진은 자진 입대를 강요하는 일본군이 홍보용으로 찍은 것으로 사진의 주인공인 전문규 씨와 그의 가족들의 눈빛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함이 가득했다.

전시실 곳곳에는 당시 일본이 우리에게 행했던 극악무도한 행위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증거 자료가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장행기’이다. 이는 ‘장렬하게 전장으로 떠난다’는 의미로 강제 노동을 가기 전, 일본군들은 그 깃발을 휘날리며 사람들에게 마치 대단한 일을 하러 간다는 착각을 준 것이다. 하지만 조선 사람에게는 ‘젊은 사람이 죽으러 가는 깃발’이라 불린 청춘만장(靑春輓章)에 불과했다.

2관인 5층으로 올라가자 실제 크기로 재현된 포로 수용소, 탄광, 위안소 등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위안소 안에는 침대 하나와 세숫대야가 놓여 있었고 크기는 발 디딜 틈 없이 작았다. 그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어린 나이의 소녀들이 상상도 못할 일들을 당하며 겪었을 두려움에 울컥했다. 먹먹한 가슴으로 위안소를 지나니 일본군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옛날 전화기의 수화기 너머로 현재 생존 중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김학선 할머니의 용기가 정말 감사하다. ‘기림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선정되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잘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굉장히 뜻깊다.”

국립일제동원역사관에서 해설원으로 일하는 권순영 씨는 ‘기림의 날’ 선정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이어 그는 “역사관을 통해 사람들이 나라를 빼앗겼던 아픈 역사들을 함께 기억하고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며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 취재 사진 조아름 수습 기자
  • - Copyrights ⓒ 경상대학교 신문방송사 -

목록

사이트 안내 및 정책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보공개
  • 네티즌윤리강령
  • 이메일집단수집거부
  • 교직원검색
  • 규정집
  • 교직원행동강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