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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나들이] ‘형평운동기념탑’,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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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조선의 백정(白丁)은 어떠한 지위와 어떠한 압박을 받아 왔던가? 과거를 회상하면 종일토록 통곡하여도 혈루(血淚)를 금할 길이 없다. 여기에 지위와 조건 문제 등을 제기할 여유도 없이 일전의 압박을 절규하는 것이 오등(吾等)의 실정이다. 이 문제를 선결하는 것이 아(我) 등의 급무라고 설정하는 것은 적확한 것이다. 비(卑)하고 빈(貧)하고 천(賤)하고 굴(屈)한 자는 누구였던가?”

위 글은 1923년 형평사를 창립하고 형평 운동을 일으킨 백정 이학찬이 읽었던 형평회 취지문의 한 구절이다. 형평 운동은 1923년부터 진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백정의 인권 해방 운동이다. ‘형평’은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비유한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백정들의 신분 해방 정신을 기리고자 시민 1500여 명의 성금을 모았다. ‘형평운동기념탑’은 1996년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에 준공되었고 이후 진주시에 기증되었다.

하지만 최근 이 기념탑 이전 문제를 놓고 진주시와 형평운동기념사업회가 큰 갈등을 빚고 있다. 진주시가 기념탑 이전을 요구하는 이유는 ‘진주대첩 기념광장 조성사업’ 때문이다. 진주시는 진주성 촉석문 앞 일명 ‘장어거리’를 철거하고 이곳에 2만 5000㎡ 규모의 진주대첩 기념광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지난 2007년부터 사업비 총 980억원을 들여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공사는 올해 말까지 착공해 2018년 하반기에 완료할 예정이다. 현재 광장 조성 예정부지에는 철거와 보상이 모두 끝나면서 형평운동기념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태이다.                                                                                                     
  • 취재 사진 임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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