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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목포 바다는 여전히 차갑기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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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1일’. 이 숫자는 진도 앞바다, 팽목항에서 세월호가 전남 목포 신항 부두로 옮겨지기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지난 4월 11일 세월호가 완전히 뭍으로 나와 목포 신항에 몸을 뉘였다. 세월호는 바다 밑에서 육지로 올라왔지만 이보다 중대한 일이 남아 있다.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머물러 있을 미수습자를 찾아나서는 일이다. 노란 물결이 아직도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전남 목포 신항을 다녀왔다.


‘1091일’. 이 숫자는 진도 앞바다, 팽목항에서 세월호가 전남 목포 신항 부두로 옮겨지기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사진은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세월호가 있는 목포 신항을 가다


되짚어 본 슬픈 배 이야기

2014년 4월 16일 그날,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갑작스레 기울었다. 물살 빠르기로 유명한 맹골수도에서 476명의 생명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안전하게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선내 방송이 이어졌다. 승객을 두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이 TV 화면에 나왔고 점점 가라앉는 배가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172, 295, 9, 구조자, 사망자, 미수습자. 슬픈 숫자를 남기고 가라앉은 배. 골든타임이 지나고 하루, 이틀, 사흘… 노란 리본과 함께 팽목항의 기다림은 시작됐다. 잠수사들은 시신 수습을 위해 밤낮없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295번째 사망자 단원고 황지현 학생을 마지막으로 미수습자 11명을 뒤로한 채 잠수수색은 2014년 11월 종료됐다. 이후 거듭된 인양 시도 끝에 1073일, 검은 바다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목포 신항으로 향했다. 1091일, 세월호는 목포 신항에 거치됐다. 최근 선체 내부 수색 작업이 한창인 세월호에서 고창석 교사, 허다윤 학생의 유해가 발견됐다. 단원고 황지현 학생의 시신을 수습한 이후 931일 만이었다.


세월호의 새 보금자리, 목포 신항

목포, 도로 곳곳에 노란 리본이 새겨진 현수막이 바닷바람에 날리고 있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질 무렵 먼발치에 자그맣게 목포 신항이 보였다. 바다는 자신이 삼킨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평온하게 파도친다. 무서울 정도로 일정한 파동을 유지한 채. ‘세월호 거치장, 400M 앞’이라 쓰여 있는 간판이 보인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히’. 각자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이 담긴 긴 노란 리본이 난간에 묶인 길을 따라 걸어 본다. 표지판 옆으로 수분이 부족해 쩍쩍 갈라 터져 가는 땅은 무엇이 그리도 목말랐을까. 공허한 자문이 길어질 즈음 세월호의 선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좌우로 기다랗게 늘어진 철조망에는 노란 리본이 벽을 색칠한 것처럼 빽빽하게 달려 있어 철조망 너머 무엇이 있는지 볼 만한 자그마한 틈도 없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에 걸음을 멈춰 멀찌감치 옆으로 누워 있는 세월호를 바라보았다. 

배를 보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곳, 목포 신항에 상주할 법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다가가 물 한 잔을 건네받으며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본다. “우린 의료 지원이랑 음료 봉사, 자원 봉사하고 있지. 목포시 차원에서도 하고 있고 민간 차원에서 자원 봉사도 오고. 이유? 없지 여기 봉사는 그냥, 당연히 오는 거지.” 또 다른 천막, 이름은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이다. 큼지막한 브라운관이 빛을 뿜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는 화면에서 세월호 관련 다큐가 재생되고 있었다. “11명이 아직 안에 있는데 우리 민간 잠수사들은 철수하라 하고, 누명 씌우고….” 북북 찢는 소리와 동시에 해경으로부터 받은 감사장이 찢겨 바닥에 버려진다. 현장 철수 이후 주검으로 발견된 김관홍 잠수사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우리 아들이 2학년 8반 22번 장준형인데, 새 번호가 하나 더 생겼어요. 207번이라고. 이게 뭔 숫자냐면, 207번 째 수습자.” 이어 장준형 학생의 아버지이자 세월호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 장훈 씨의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발걸음을 옮겨 컨테이너 건물로 향한다. ‘나비야 집에가자’라는 주제의 세월호 3주기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다양한 추모 예술 작품이 벽에 걸려 있다. 노란 리본, 세월호, 검은 바다, 청와대, 아이들의 초상화. 들어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작품을 감상하다 고개를 돌려 버리거나 떨군다.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림들이어서일까. 천천히 현장에 들어선 발걸음은 그림들을 빠르게 둘러보고는 황급히 컨테이너를 떠나고 만다.

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반대편으로 이동해 우측에 세월호를 두고 철조망을 따라 걸어 본다. 한 컨테이너 안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미수습자 가족 만남의 장소’에는 다수의 인파가 앉아 있다. 세월호 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은 채 주고받는 대화, 그러나 시선은 노란 리본으로 채워진 철조망 쪽에 고정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항구의 차분한 공기에 카메라 셔터를 누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국화를 들고 있는 여고생이 보인다. “꽃은 돈 주고 산 거에요. 저도 고2거든요. 그래서 한 송이지만 주고 싶었어요.” 여고생은 철조망 사이에 두 손에 쥐고 있던 국화를 가지런히 놓고 섰다. 국화를 보는 것인지, 노란 리본에 새겨진 문구를 보는 것인지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옆을 지나가던 키 작은 꼬마가 아빠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빠 이 노란색 다 누가 붙인 거야?” 들려오는 대답은 “응, 아이들 돌아오길 원하는 사람들.”


철조망 외부에서 세월호 선체가 훤히 보이는 공간을 찾았다. 노란 리본이 달려 있지 않은 유일한 부분이다. 3년,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에 이제야 육지를 밟은 배의 겉모습은 상처투성이었다. 선체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여 보지만 끝없는 적막만이 흐른다. 옆에서 선체를 우두커니 바라보던 노부부가 적막을 깬다. “배가 녹이 참말로 많이도 슬었네.” “저그서 뼈 많이 나왔다 하든디.” “그게 뉘 건지 알아야 가족들 찾아가지.” 사람들은 길게 말하지 않는다. 항구의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 새가슴이 되어 말 한마디 붙이는 것조차 몹시 어렵게 여겨진다. 아직 수습되지 못한 9인의 사진이 철조망에 나란히 걸려 있다. 각자의 이름과 사연 그리고 사진 주변에 수호신처럼 빽빽하게 붙여진 노란 리본과 해바라기가 보인다. 과제로 남아 있는 ‘9’라는 숫자는 야속하게도 줄어들지 않는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 이 버스 시외버스터미널 가냐고 묻는 내게 버스 기사님이 “이거는 돌아가는 긴디, 저 짝에서 안 타고 와 여서…”라고 핀잔을 주며 “경남 말씨인데 어디서 왔는가”라고 묻는다. “진주요.” “이제 9명 남았다지? 얼른 다 찾아내야 할 것인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의 승차단말기에 버스카드를 갖다 댄 후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는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서 더 기다려 본들, 3년이란 세월보다 더 길까. 도로 곳곳에는 여전히 노란색 현수막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9명의 사진 뒤로 세월호가 보인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히’. 각자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이 담긴 긴 노란 리본들.

철조망에는 노란 리본이 색칠한 것처럼 빽빽하게 달려 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다양한 추모 작품이 전시되었다.

  • 취재 사진 안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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