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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1980년, 뜨거웠던 광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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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1년 중에 가장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는 시기이며,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 많은 행사가 있어서 가정의 달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런 5월이 다가올 때마다 광주 지역의 분위기는 엄숙해진다. 바로 ‘5·18민주화운동’ 때문이다.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 지역과 전남 일원에서 벌어진 ‘5·18민주화운동’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한 평범한 민중을 기억하고, 앞으로 우리가 누려 갈 민주주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전국 대학생 230여 명이 지난 5월 13일 광주에 모였다. 우리 대학도 사회과학대 학생회와 진주 지역 ‘진보학생넷 청년100℃’가 함께 ‘오월, 봄을 마주하다’라는 광주 기행단을 꾸렸다. 기자도 이들과 함께 직접 현장에 다녀왔다.


전국에서 모인 ‘오월, 봄을 마주하다’기행단 학생들은 5.18민주화운동 추모탑 앞에서 추모와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5·18민주화운동 기념 대학생 광주 기행


1980년 광주에서 희생된 사람들
햇볕이 내리쬐는 이른 아침, 우리 대학 가좌캠퍼스 경영대 앞으로 본교 및 경남과기대 학생 50여 명이 모였다. ‘오월, 봄을 마주하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은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버스에 올랐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사회과학대 심아영(정치외교 4) 학생회장은 “18년간 지속된 군사 독재 이후 새로운 군부 세력이 또다시 나타났을 때, 광주 지역에서는 대학생과 민중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는 최근 국정농단 사태 때 평범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기행이 앞으로 우리 대학생들에게 시대적 상황에, 시대적 양심으로 어떠한 일을 해 나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이번 기행의 의미를 다졌다. ‘진보학생넷’의 진주 대표 김태양(사회과학대 심리학과 4) 학생은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 참가 학생들에게 간결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다 함께5·18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신묘역이라고도 불리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였다. 전국에서 모인 ‘오월, 봄을 마주하다’ 기행단 학생들은 5·18민주화운동 추모탑 앞에서 추모와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학생 230여 명은 모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두 손을 함께 모아 꼭 잡은 학생들도 보였다. 현장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작은 태극기와 사진, 묘석이 있는 묘들이 빼곡하고 모여 있었다. 하얀 국화꽃 다발 또한 꽂혀 있었는데, 최근 어버이날이 있었던 탓인지 카네이션이 함께 놓여있는 비석도 곳곳에 보였다. 광주 기행에 참여한 학생들은 조를 나눠 비석의 주인의 삶과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그들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 기행에 참여한 김혜민(경남과기대 3) 학생은 “이곳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한 번 왔던 곳임에도 역시 현장에 오니 슬프다. 방금 최미애라는 분의 묘 앞에서 그분의 삶과 관련한 내용을 읽었는데, 마음이 더 아파졌다”고 말했다.


국립 5·18민주묘지 근처에는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은 부모들과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른들로 북적였다. 제법 무더웠지만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정장 왼쪽 깃에 노란 리본 뱃지를 단 분들도 보였다. 인천에서 왔다는 최병남(75) 씨는 “살아생전에 꼭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이번에 정권이 교체되지 않았나. 다시는 권력자들이 세상을 마음대로 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구묘역이라고 불리는 ‘민족민주열사묘지’로 이동했다. 앞서 들렀던 신묘역이 5·18 당시 희생된 열사를 안치해 놓은 곳이라면, 구묘역은 5·18 이후 희생된 열사를 안치해 놓은 곳이다. 이곳에도 많은 이들이 그들을 기리고 있었다. 독특한 점은 노동 열사들의 묘였다. 보통의 묘가 남향으로 자리했다면 그들의 묘는 북향으로 안치되어 있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처우가 나아질 때까지 따뜻한 곳에 묻힐 수 없다는 대부분의 노동 열사의 뜻에 따른 것이라 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된 전남대에서는 ‘대학생 한마당’이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광주를 찾은 대학생들이 모여 축제의 현장을 즐겼다. 전남대에서는 풍물패의 공연을 시작으로, 함창과 연극 등 다양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2017년의 대학생,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다

오후 9시, 5·18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 된 전남대에서는 ‘대학생 한마당’이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광주를 찾은 대학생들이 모여 축제의 현장을 즐겼다. 진보대학생넷 박지하(29) 대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한 5·18민주화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많은 희생들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광주에서 그 시절을 돌아보고, 또 우리는 앞으로 어떤 내일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며 함께 노래와 춤으로 즐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대에서는 풍물패의 공연을 시작으로, 합창과 연극 등 다양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무대 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려지자 공연장 앞 잔디에 빼곡하게 앉아 있던 대학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모인 대학생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불렀다. 주먹을 꽉 쥔 결연한 표정의 학생들의 모습에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갈 민주 사회에 대한 열망이 느껴질 정도였다.


공연 중간에는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의견 또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있었다. 한 학생은 “3천원짜리 밥을 먹고, 자신의 옷을 스스로 벗어서 새로운 정권이 아닙니다. 국정 교과서를 폐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당당하게 부를 수 있어서 새로운 정권이 아닙니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 바꿨기 때문에 새로운 정권인 것입니다”고 말해 그곳에 있는 학생들의 환호성을 받았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합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노래패 ‘우리나라’가 무대로 나와 ‘백두산’, ‘경의선 타고’, ‘우리 하나 되어’, ‘다시 광화문에서’와 같은 요즘에는 듣기 어려운 민중가요를 불렀다. 현장에 모인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잔디밭을 함께 돌기도 하며 행사를 즐겼다. 현장에는 ‘오월, 봄을 마주하다’라고 적힌 깃발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인 ‘평화나비’의 깃발도 있었고 전국 대학 ‘총학생회’ 이름도 보였다. 다양한 이름이 담긴 깃발을 보면 전국 각지의 대학생이 한 공간에 모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 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20대인 이들이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갖고 사회를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또 참여할지 기대가 되었다.
                          


구묘역이라고도 불리는 ‘민족민주역사묘지’는 5.18이후 희생된 열사를 안치해 놓은 곳이다.

  • 취재 사진 노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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