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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전통문화를 찾아서 ①] 작품성과 경제성 두루 갖춘 통영 전통 공예 ‘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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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남쪽 끝자락, 영·호남 중간에 있는 통영(統營)을 떠올려 보자. 함께 떠오르는 예술가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 화가 전혁림, 연극인 유치진 등 통영 출신 예술가 중에는 ‘거목’이 많다. 청마문학관, 김춘수유품전시관, 박경리기념관, 윤이상기념관을 비롯해 통영전통공예관, 옻칠미술관 등 인구 14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는 예술의 향기를 풍기는 기념·전시관도 다수 존재한다. ‘통영’이라는 지명은 선조 37년(1604년) 이곳에 설치된 경상·전라·충청의 삼도수군통제영사(三道水軍統制營使)에서 비롯됐는데 이 무렵 이순신이 설치한 공방 ‘통제영’에서는 군수품이 만들어졌다. 전쟁 이후에는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관급 장인이 운영하는 다양한 공방이 대규모로 생기며 상호 분업, 협력을 이루는 12공방 체제를 갖추게 됐다. 통영자개, 통영발, 통영갓, 통영소반, 통영누비, 통영장석 등 통영 공예의 오래된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이러한 다양한 문화 중 ‘누비’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조성연 씨가 통영누비 장인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음매가 보이지 않도록 두 천을 프린트한 듯 자연스럽게 이어붙이는 등 고도의 기술을 연마했기 때문이다.

‘누비’를 아십니까

‘누비 장인’이라 불리는 조성연 씨는 통영에서 20년 넘게 누비를 만들고 있다. 누비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 병사들의 군복 원단 안에 목화솜을 덧대고 오밀조밀하게 바느질 하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은 것에서 유래했다. 통영의 어부들도 누비를 입었는데 따뜻해서 계속 사용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재봉틀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누비의 기본은 두 겹의 옷감 사이에 솜을 넣고 직선으로 바느질 하여 두 겹의 옷감을 고정하는 것으로, 방식에 따라 홑누비, 겹누비, 솜누비로 구분되고, 잔누비, 오목누비 등 다양하게 불린다. 조성연 장인은 누비를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원석’이라고 표현한다. 누비의 강점은 어떤 원단이든지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원단에 솜을 넣고 일정한 간격으로 누비면 흐물흐물하던 부드러운 원단도 따로 가공하지 않아도 형태를 갖출 수 있다. 그는 소매치기들이 통영누비를 특히 싫어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려주었다. 가죽 가방은 칼질 한 번이면 찢어지는데 누비는 칼질 몇 번을 해도 찢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만큼 누비가 튼튼하다고 했다.

조 씨가 통영누비 장인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음매가 보이지 않도록 두 천을 프린트한 듯 자연스럽게 이어붙이는 등 고도의 기술을 연마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로 그가 만든 누비는 다채로운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비를 디자인할 때도 사선으로 바느질하거나 마감 방법을 달리하여 사소할 수 있는 부분에도 고급화를 꾀한다.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솜을 빼고 누비기도 하면서 작품의 기능성을 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누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방식만 따르지 말고 늘 ‘나만의 것’을 개척하라”고 강조한다. 공예품은 그 특성상 소비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기술을 연마해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


젊은 층 공략에 나서다


이러한 누비에 대해 젊은 층의 관심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누비 제품에 대해서도 나이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라 여기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늘에 구름을 누비다’가 만든 제품은 기존의 누비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충분하다. 통영누비 가방과 소품을 주문 제작하는 이곳의 누비 제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이 눈길을 끈다. ‘하늘에 구름을 누비다’ 박희진 대표는 “엄마와 딸이 함께 방문해 초등학생인 딸이 쓸 누비 백팩을 주문하기도 한다. 딸이 직접 원단을 고르고 엄마와 함께 상의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누비 제품을 만들 때는 가장 신경 쓰는 점이 있다. ‘실용적이고 튼튼한데 디자인도 괜찮은가’이다. 여기에 누비 작품을 주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제가 묻기도 전에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 왔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도 있으십니다.” 외국에 사는 아들에게 노트북 가방을 선물하는 어머니는 작품을 주문하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했단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박 대표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방을 만들고, 가방 한쪽에 ‘아들아, 사랑한다’는 자수를 새겨 넣기도 한다.

그가 통영누비를 접한 것은 10여 년 전 통영에 살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누비를 판매할 요량은 아니었다. 아름답고 실용적이기까지 한 통영누비가 점점 사람들에게 잊히는 게 아쉬워 취미 삼아 누비 공예를 시작했는데 자신이 만든 작품을 인터넷에 올린 것을 보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전통공예가 전통이라는 예스러움에만 머물고 한정 지으려는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쉽다며 “‘예스러움’을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전통공예의 바탕에 현대인의 감성을 작품 속에 담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소외 계층의 경제 활동을 돕다


통영누비가 전통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누비 사업은 가능성이 많아 소외 계층의 경제 활동을 돕는데도 쓰인다. ‘민들레누비’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기업인 이곳에서는 통영의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 정착을 잘할 수 있도록 통영누비 기술을 교육하고 그들이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들이 누비 사업을 하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이주여성들 중에는 자국에서 재봉틀과 연관된 일을 한 사람이 많은데 통영은 누비가 유명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누비 기술과 연계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민들레누비에서 만드는 누비 가방의 주된 소비층은 40대이지만 전 연령층이 사용 가능한 ‘trend작’이라는 특별한 제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제품 디자인도 결혼이주여성들이 부분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누비 제품에는 정성이 들어가지만 1인당 하루 생산량은 1~3개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이주여성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강분애 대표는 “인도네시아의 한 대학은 대학 졸업의 필수 요건으로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 참여가 있다고 한다. 우리 지역에도 대학생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데,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대학생이 많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 왼쪽) 민들레누비의  ‘trend작’
사진 오른쪽) 조성연 장인의 작품

 



사진 왼쪽 및 오른쪽)
공방 '하늘을 누비다'의 작품

  • 취재 사진 최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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