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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섬진강과 지리산을 품은 문학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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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토지, 이병주의 지리산, 김동리 역마, 김훈의 칼의 노래, 고은의 섬진강에서….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작가와 문학 작품의 이름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경상남도 하동군’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하동은 예부터 다양한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어 왔는데 특히 하동군 차원에서 문학 작품과 관련 있는 장소를 단장하고, 다양한 문학 행사를 열면서 ‘문학의 수도’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하동은 왜 많은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었을까? 박경리문학관에서 만난 해설사 오세희 씨는 “한반도의 기운이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곳이 지리산이다. 입지가 좋은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며 하동에서 많은 이야기가 탄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22일과 23일 이틀간 다수의 문학 작품 속 배경이 된 하동을 방문해 문학의 향기를 따라가 봤다.



박경리문학관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평사리 풍경이다.

악양면 평사리, ‘토지’의 무대를 밟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인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26년 동안 집필했으며 원고지 3만1200장(총 20권)에 이르는 대하소설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도 구한말 1897년 추석날 이야기가 시작돼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던 날 끝난다. 이 시간 속에는 한 가문의 몰락과 다시 일어서는 과정, 소소한 개인사 등이 담겨 있다. 등장인물만 해도 700여 명 이상인데, 5대째 대지주인 최치수와 다양한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민족의 역사와 수난까지 생생하게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탐구와 민족성이 돋보이는데, 소설에 쓰인 단어는 외국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한국어의 미적 특징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첫날은 이러한 소설 ‘토지’의 공간적 배경이 된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을 찾았다. 최참판댁은 소설의 주인공 서희와 길상이 어린 시절을 보낸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섬진강이 마을을 감싸 돈다. 이곳은 드라마 토지의 촬영장으로 사용되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국내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활용된 가상의 마을이다. 마을로 올라가는 길에는 ‘서희와 길상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도 보이는데, 작은 가게의 이름도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설 속 공간을 실제로 옮겨놓은 듯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집집마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방문객들은 토지를 읽었든 읽지 않았든 이 공간에서만큼은 마치 ‘토지’의 작품 세계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을 가장 위쪽에 있는 최참판댁은 아래에 있는 초가집들과는 달리 한옥 14동으로 구성되어 그와 소작인의 부의 차이를 한눈에 알 수 있게 꾸며졌다.


최참판댁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지난해 4월 문을 연 박경리문학관이 있다. 이곳은 1층 규모의 기와 한식 목구조로 건설되었으며 박경리 선생이 평소 사용하거나 아끼던 유물 41점과 각 출판사가 발행한 소설 ‘토지’ 전질, 초상화, 영상물, 소설 속 인물 지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에서 하동군에 무상 대여한 것이다. 문학관마당에 들어서면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가장 먼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선생의 생전 모습을 딴 자그마한 동상 아래에는 선생의 유고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동상은 특이하게도 정면이 아니라 비스듬히 드넓은 평사리를 내려다보는 형태다. 그 이유에 대해 박경리문학관 오세희 씨는 선생이 생전에 좋아했던 평사리를 보다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리 선생은 작품을 구상한 후 소설의 배경지를 모색하던 중, 넓은 들이 있고 섬진강과 지리산이라는 역사적 무게를 갖춘 평사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이곳이 소설의 훌륭한 배경이 될 것이라 느꼈고 평사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바 있다.





사진 위) 평사리는 섬진강이 마을을 감싸고 도는 소설 ‘토지’의 배경이다.

사진 가운데) 박경리문학관에는 선생의 유물 41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아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문구가 새겨진 동상.


화개장터 속 ‘역마’의 자취를 찾아

다음 날 찾은 곳은 ‘화개장터’이다. 다소 추운 날씨 때문이었을까. 시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떠들썩한 사람들의 생기는 느낄 수가 없었다. 고사리·곤드레·도라지 등 각종 나물을 파는 가게를 구경하는 사람, ‘화개장터’를 부른 가수 조영남 동상과 사진을 찍는 사람, 기념품으로 장식품을 구매하는 사람 등 관광객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화개장터와 만나고 있었다.

화개장터는 과거 전국 7위의 거래량을 자랑하는 큰 시장으로 ‘이웃사촌 모두 고운 정 미운 정을 주고받는’다는 노래 가사처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산촌이 황폐해졌고 덩달아 장터도 쇠락하게 되었다. 현재 화개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관광지에 가깝다. 이런 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있는데 바로 작가 김동리의 ‘역마(驛馬)’이다.


한 군데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역마살’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운명적으로 타고난 역마살이 있다. 화개장터의 주막집 여자가 남사당패 체장수와 하룻밤 인연으로 옥화를 낳는데, 옥화 역시 떠돌이 중과의 인연으로 성기를 낳게 된다. 성기는 남사당패였던 할아버지와 중인 아버지로부터 역마살을 물려받았는데 옥화는 아들이 그런 운명을 물려받지 않도록 하고자 노력한다. 옥화는 자신의 아들인 성기의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쌍계사에 보내기도 하고, 체장수의 어린 딸 계연과 결혼시켜 아들의 역마살을 잠재워 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체장수가 늙은 나이에 낳은 딸 계연이 옥화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계연이 성기를 떠나게 되고 성기는 앓아눕는다. 자신의 운명인 역마살을 막아 보려 했지만 결국에는 운명을 받아들인 성기는 엿판을 메고 유랑을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화개장터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 말고는 이곳이 역마살이라는 동양적이며 한국적인 운명관을 그린 소설 ‘역마’의 배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장터 한쪽에 소설에 등장한 ‘옥화주막’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 앞에서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소설 속 옥화주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가게 안에 있던 아주머니들은 “여기가 그 옥화주막입니다”라고 외치며 밖으로 나올 뿐이다.





사진 위) 화개장터는 과거 전국 7위의 거래량을 자랑하는 큰 시장이었다.
사진 가운데) 입구의 안내판만이 이곳이 소설 ‘역마’의 배경지라는 것을 알린다.
사진 아래) 소설에 등장한 ‘옥화주막’과 같은 이름의 상점도 있다.

  • 취재 사진 이희성 안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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