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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 사라진 전통 문화, 다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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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는 이 지역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민족 고유의 전통 놀이인 ‘솟대쟁이놀이’가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사라진 솟대쟁이놀이에 대한 기록을 오늘날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동안 전해져 내려왔던 전통 놀이 또한 역사의 한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솟대쟁이보존회’가 재현한 공연을 직접보고 솟대쟁이놀이 복원 사업의 의미와 진주 전통 문화와 그것의 가치에 대해 알아보았다.




솟대쟁이의 본거지, 진주
옛날부터 진주는 문화와 교통 및 행정, 교육, 그리고 산업이 집중되어 있던 지역이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고, 큰 장이 설 때면 각 지방 농악패의 우두머리나 명인들이 모여 신명나는 놀이판을 벌이곤 했다. 이때 최고로 꼽힌 놀이패가 바로 그 당시 경상남도 일대를 떠돌며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던 ‘솟대쟁이패’이다.


‘솟대쟁이패’는 조선 후기에 발생한 유랑 광대 예인 집단의 하나로, 장터를 찾아 떠돌아다니던 곡예 중심의 예인 집단을 뜻한다. 놀이판을 꾸밀 때 한 가운데에 솟대와 같은 긴 장대를 세운 뒤, 장대의 꼭대기로부터 양 편으로 두 가닥씩 네 가닥의 줄을 늘여놓고 그 위에서 몇 가지 재
주를 부렸기에 ‘솟대패’라고 부르기도 한다. 솟대쟁이놀이보존회(보존회) 김선옥 회장은 “솟대쟁이패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랑 광대 전문 예인 집단으로 진주를 본 거지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유랑단이었다”고 말했다.


솟대쟁이패의 대표 기예로는 ‘솟대타기’, ‘쌍줄백이’와 같은 공중기예와 ‘죽방울놀이’, ‘땅재주’, 현재의 마술과 비슷한 ‘얼른’ 등이 있다. 김선옥 회장은 “솟대쟁이패는 남사당패에서 하는 외줄치기 뿐만 아니라 쌍줄 위에서 재주를 부리기도 하고, 놀이판에는 항상 3~5m되는 솟대를 세워 놓고 그 위에서 재주를 부린다. 이런 점이 경기도와 서울 지역을 본거지로 해서 떠돌아다니는 유랑대인 남사당패와 비교 된다”고 덧붙였다.


사라진 솟대쟁이놀이 복원

1900년대에 많은 활동을 펼친 솟대쟁이패는 1936년 황해도 원산 공연을 마지막으로 돌연 해산되었다. 김선옥 회장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솟대쟁이가 신기하고 위험한 재주를 많이 했는데, 일본의 ‘곡마단’이 ‘솟대쟁이패’에 비해 재주가 떨어지는 것 같으니 총과 칼을 들이대면서 솟대쟁이의 공연을 제지했다”고 말했다.


결국 솟대쟁이패는 일제 강점기 때 사라지고 만다. 지난 2013년 서울에서 남사당패에 의해 솟대쟁이놀이 1차 복원이 진행되었지만, 솟대쟁이패의 본거지가 진주라는 학자들의 지적과 반대 따라 다시 진주 지역에서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2016 전통 예술 복원 및 재현 사업’의 일환으로보존회가 주최하고 시연하는 재현 공연이 그것이다. 보존회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아 2014년도부터 총 세 차례에 걸쳐 재현 공연을 하게 되었다.


김선옥 회장은 “남사당패는 1965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는 세계인류무형유산 유네스코에까지 등재되어 있는데, 솟대쟁이패는 재주가 더 다양하고 난이도가 높음에도 중간에 사라져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보존회는 솟대쟁이패를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무형문화재로 신청하는 등 솟대쟁이패가 국가지정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선옥 회장은 “진주 오광대와 진주 삼천포 12차 국가문화재 농악을 비롯해 진주 지역의
문화유산은 모두 솟대쟁이놀이 속에 다 포함 되어 있다고 생각 한다”며 “솟대쟁이패가 진주에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진주 문화의 자산으로 도약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신명나는 놀이마당
한편 지난 11월 19일, 진주성 야외공연장에서는 전통 예술 복원 및 재현 사업인 ‘솟대쟁이놀이 놀~판’ 세 번째 공연이 개최되었다. 마지막 재현 사업이기도 한 이번 공연은 1부에서 지난 복원 종목 놀이를 간단히 보여 준 뒤 2부에서 복원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3부에서 올해 새롭게 복원한 ‘판줄’, ‘쌍줄타기’, ‘농환’을 중심으로 시연되었다.


공연은 ‘신명나게 놀아보세’라는 솟대쟁이패의 외침과 함께 시작되었다. 연희자의 재담을 받아 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인 ‘매호씨’와 ‘죽방울 놀이’의 연희자인 ‘죽방울제비’가 서로 입담을 주고받으며 공연을 하는 것이 참으로 해학적이었다. 매호씨는 특유의 말재간으로 솟대쟁이놀이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재의 마술에 해당하는 전통 마술인 ‘얼른’은 여성 관객의 참여로 진행되었다. 관객이 쭈그리고 앉아 달걀이 담긴 긴 원통을 품는 시늉을 하고 암탉과 같이 ‘꼬꼬댁 꼬꼬꼬꼬’하고 네 번을 울면 원통 안에서 병아리들이 나오는 식이다. 그 뒤 이어진 3부 공연에서 매호씨는 땅 위에서 줄타기 흉내를 내며 익살을 부리는 ‘땅줄타기’를 보이기도 했다. 진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그의 익살맞은 몸짓에 객석에서 웃음보가 자주 터졌다.


공연을 관람한 이진아(서울시, 29) 씨는 “이번에 지인을 만나러 진주에 왔다가 직접 공연을 보게 되었다”며 “솟대쟁이에 대해 조금 알고는 있었다. 현대의 마술 공연인 ‘얼른’에 관객으로서 참여하게 되었는데 재미있고 좋았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 ‘죽방울제비’와 꽹과리반주를 맡았던 문학종 씨는 “진주를 근거지로 했던 솟대쟁이가 과거엔 잊혀 졌다가 새롭게 복원되었다. 진주에 살면서 진주가 잃어버린 옛 것을 되살리는 것이 좋다”며 “아직 우리가 복원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시연한 종목들도 복원을 했다기보다는 복원을 준비해 나가기 위한 과정이기에 아직 시작 단계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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